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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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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예술인을 담다] (16) ‘무위의 시학’ 성선경 시인

삶도 문학도 의도하지 않아 더 특별한 시인

  • 기사입력 : 2024-03-20 08: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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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평생 시에 매달려
    꽃 가꾸는 것, 설거지 하는 것도 삶이자 시
    퇴직 후 10년간 매해 책 낼 수 있었던 이유

    올 등단 36년… 연작시 65편 담은 민화 출간
    가장 본질적인 것에 접근했을 때 가장 좋아
    꾸미거나 만든 것 아닌 실제 우리네 삶 담아


    거울에 비친 모습이 너무나도 보잘것없어서 그 위로 가면을 씌웠다. 무엇이든 원래의 것보다는 좋은 것 같아서. 하지만 그것들은 내 것이 아니어서 꽤나 불편했다. 그럼에도 욱여넣었더니 결국 원래의 나보다도 못한 것이 세상에 나왔다. 나를 가리느라 집중한 통에 오늘 내 눈에 담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날의 그들 또한 정말 나를 만난 것은 아니니, 우리가 만나 얻은 것이 있기는 한가.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성선경 시인이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성 시인은 세상을 본다는 것은 욕망없이 순수하고 담백하게 접근하는 것이라며 본다는 것을 강조했다./김승권 기자/
    성선경 시인이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성 시인은 세상을 본다는 것은 욕망없이 순수하고 담백하게 접근하는 것이라며 본다는 것을 강조했다./김승권 기자/

    꾸며서 아름다운 것에 의미가 있을까. 아니, 애초에 그것이 아름답기는 할까. 성선경(64) 시인의 답은 ‘아니’다. 그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진경(眞景)에서 실현되는 까닭이다. “좋은 요리는 조미료의 맛이 아니라,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것이지요. 삶도 문학도 그런 것 아닐까요. 가장 본질적인 것에 접근했을 때가 가장 좋은 그런.”

    ‘자! 물어보자/ 호박에 줄을 그으면 뭐가 되지?/ ‘수박이요’/ 아니지 줄 그어진 호박이지/ 그럼 뛰는 말에다 줄을 그으면 뭐가 되지?/ ‘줄 그어진 말이요’/ 아니지 그건 얼룩말이지/ 다시 생각해 봐/ 겉은 변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 거야/ 줄이란 그런 것이지/ 봐! 물어보자/ 너는 호박이니?/ 말이니?’ - 민화19

    등단 36년의 시인이 올해 봄 ‘민화’라는 시집을 낸 이유도 같다. 백성 민(民)에 그림 화(畵)거나 말씀 화(話)거나, 어쨌든 민초들의 이야기. 꾸며지거나 만들어져서 상징화된 것이 아닌 실제의 삶과 마음을 보여주는 것. 사람살이야말로 ‘진경’이니까. 그래서 시집은 그의 이야기이자 나의 이야기, 당신의 이야기를 담아 ‘민화’라는 연작시 65편으로 꾸려진다.

    ‘된장 맛은 뚝배기라고/ 똑똑한 년 예쁜 년한테 못 이기고/ 예쁜 년 돈 많은 년한테 못 이기고/ 요즘 어디 화롯불에 된장 뚝배기 올려놓은 집 있다/ 세상도 알고 보면 다 거기서 거기/ 돈 많은 년 아들 잘 둔 년한테 못 이기고/ 니 참 잘났다 된장을 한 숟갈 퍼먹으며/ 제발 빈다, 아들아!/ 니 꼭 성공해라.’ - 민화2

    고등학교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지금까지. 평생을 시에 매달렸다고 표현할 만한 시인에게 시란 언어의 문제를 넘어 삶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에게 ‘어떤 시를 쓰느냐’는 것은 곧 ‘어떤 삶을 사느냐’는 것이다.

    “우리가 ‘본다’는 말을 많이 씁니다. 본다. 관(觀)의 문제거든요. 인생관, 세계관 같은. 이건 삶에 의해 만들어지죠. 시(詩)도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로 접근하느냐가 되겠지요.” 그래서 그의 생각에 시인은 인생의 ‘맵고 짜고 기름진/ 이 마음을 취하는 사람/ 어쩌나, 이것 역시/ 건강에는 매우 해롭(민화22)’지만 시를 쓴다.

    시인이 바라보는 세상은, 또 삶은 특별하지 않아 특별하다. ‘다 그게 그것 같지만(민화43)’ ‘별것 아닌 것들이 별것(민화14)’이 되는 순간이다. 그래서 시인은 늘 시와 함께 있다. 꽃 가꾸는 것도 삶이자 시다. 설거지하는 것도 밥 먹는 것도 역시. 지난 2015년 교직에서 물러난 순간부터 10년, 매해 한 권의 책을 낼 수 있었던 이유다.

    그는 말한다. ‘어쩌면 하루살이도 그리 말할게다/ 그 더운 여름 하루 어찌 왱왱거리며 지나왔지만/ 다시 하라면 정말 못 할 것 같다고.(민화28)’ 그렇다. 우린 그렇게 하루하루를 죽을 힘 다해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매일은 가치 없는 날이 없는 ‘살아 있는 날들이 다 생일(민화26)’이다.

    시집 ‘민화’의 해설을 맡은 구모룡 문학평론가는 성선경 시인에게서 ‘무위의 시학’을 발견한다. 아무것도 의도하지 않는 무위. 그와 그의 시는 의도하지 않아서 아름다운, 어제였고 오늘이며 내일일 것이다. ‘한때 나도 꽃이었다, 이제 새싹의 봄이 오고 있다, 새싹처럼 누구나 다 한때가 있다, 벚꽃이 피는 것처럼, 벚꽃이 지는 것처럼, 한때의 봄이 오고 있다, 그 한때의 봄이 가고 있다.’ - 민화36 일부

    김현미 기자 hm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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