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5월 10일 (금)
전체메뉴

[경남 예술인을 담다] (4) ‘꿈꾸는 여행가’ 라상호 사진가

77세 사진가 “꿈 찍으러 갑니다, 남미로”
다섯 번째 세계유산 사진집 출간 목표
1년 준비 거쳐 오늘 출국… 두 달 여정

  • 기사입력 : 2023-02-19 20:50:27
  •   
  • 오늘이다. 창동예술촌 입주작가이면서 창동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라상호(77) 사진가는 20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총 40㎏가 넘는 배낭 2개를 앞뒤로 메고 한국을 뜬다. 앞으로 두 달간 남미와 남극을 누비며 사진을 찍는다. 카메라를 짊어지고 사진 인생에서 꿈꾸던 마지막 여정을 떠나는 것이다. 막바지 여행 준비 중인 그를 만났다.

    두 달간 남미 촬영 여행을 떠날 라상호 사진가가 지난 10일 칠레 이스터섬 지도를 보여주며 여행 일정을 설명하고 있다.
    두 달간 남미 촬영 여행을 떠날 라상호 사진가가 지난 10일 칠레 이스터섬 지도를 보여주며 여행 일정을 설명하고 있다.

    ◇꿈을 이루기 위한 여정= 19살, 서울 명동 중국인 대사관 뒤 골목 서점에서 작은 핸드북을 집어 든 것이 기나긴 여정의 시발점이었다고 회상한다. 한 일본인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와 칠레 이스터섬을 답사하고 찍은 사진과 설명들이 빼곡히 담긴 책이었다.

    “처음 보는 풍경에 너무 놀랐죠. 그때부터 사진에 매료됐어요. 일본어로 돼 있어서 뭐라 쓰여 있는지 이해하고 싶어 일본어도 독학하고 그랬죠.”

    돌에 새긴 유적이 그에겐 강렬했을까, 사진을 시작한 그는 1970년대부터 석탑과 석불을 찍기 위해 경주를 비롯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이때쯤부터 ‘나도 세계문화유산 사진집 5권쯤 내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 같아요. 세계문화유산을 담아내고 설명한 도록이나 핸드북은 프랑스나 독일에서 많이 만들었거든요. 우리 시각으로 담고 한국어로 된 세계문화유산 사진집이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 생겼죠.”

    해외여행이 쉽지 않았던 때인 데다 마산에 정착하는 데 시간을 쏟으며 그의 꿈은 처음 마음먹은 30년이 지난 후에야 이뤄나갈 수 있었다. 1997년 캄보디아와의 재수교 이후인 1999년 2월 캄보디아의 땅을 밟았고 그 후 7년간 23차례 오가며 앙코르와트를 기록해 책으로 펴냈다. 2006년엔 미얀마 정부가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므락우’ 지역을 촬영한 사진집을 출간·전시했으며, 세계문화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에 올라있는 대흥사를 포함한 한국의 명사찰 단행본 시리즈 중 10권의 사진작업, 청도 운문사 사진집 ‘운문세상’을 진행했다. 또한 2018년에는 네팔 세계문화유산·히말라야 사진전을 열어 현재까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4곳을 그의 사진으로 담아냈다. 이제는 마지막 5번째 프로젝트다. 세계문화유산을 찍어야겠다는 꿈을 심어준 유산 칠레 이스터섬, 페루 잉카 유적을 프레임에 담으러 떠나는 여정이다. 늘 그래왔듯 이번에도 세계문화유산의 모습과 분위기를 후대에 잘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마지막 여정인 만큼 하나 더 붙여 그간 스스로 미비하다고 생각해온 ‘기록’을 세세하게 해 볼 참이라 했다.

    “저는 사진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찾아가는 과정이나 촬영 대상에 얽힌 이야기들을 놓쳐버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번에는 그간의 아쉬움을 딛고 여러 경험과 생각들까지 적으려 합니다.”

    두 달 간 남미 촬영 출장을 떠날 라상호 사진가가 지난 10일 칠레 이스터섬 지도를 보여주며 여행 일정을 설명하고 있다.
    두 달 간 남미 촬영 출장을 떠날 라상호 사진가가 지난 10일 칠레 이스터섬 지도를 보여주며 여행 일정을 설명하고 있다.

    ◇1년간의 준비 과정= 이 출장을 준비하는 데 꼬박 1년이 걸렸다. 온전히 사비로 가는 여정에다 패키지여행도, 관광코스만 반짝 도는 여행이 아니라 혼자 천천히 유적의 그림자까지 계산하며 촬영해야 하니 걱정이 크다. 그는 촬영장소 인근의 구글지도를 영역별로 인쇄한 것을 이어 붙여 자신만의 ‘촬영 지도’를 만들고 있다. 각 지역의 교민회에도 연락해 도움을 구하고, 온라인 예매가 쉽지 않은 남미 국내선 구간은 따로 여행사에 의뢰했다. 오래 준비했지만 먼 여정에 변수는 있기 마련. 페루의 내부 사정이 좋지 않아 입국 여부가 불투명해 일정이 또 한 번 다 틀어졌다, 칠레 이스터섬도 다시 미정이 됐다. 출발 직전까지도 확정되기 어려운 일정. 그럼에도 두근대는 여정이라 한다.

    “매우 설레죠. 자료를 찾고 현지 교민분들에 일일이 연락해 섭외하는 과정까지도요. (냉장고를 열어 김치 박스를 보여주며) 필름으로 사진을 찍기도 하는데 요새 필름값이 오르고 구하기 어려워서 있을 때마다 사놓았죠. 이걸로 멋지게 유적 사진 찍어올 겁니다.”

    지도와 카메라, 필름. 가장 중요한 것은 챙겼고 체력은 아침저녁으로 자전거를 타며 먼 곳을 누벼나갈 힘을 기르고 있다.

    ◇80살, 남미 히피를 꿈꾼다= 이 여행은 사전답사의 성격도 띤다. 여든 살에는 남미 히피로 살아보고 싶기 때문이다. 무거운 카메라 장비를 두고 작은 카메라 달랑 든 채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다 했다.

    “아끼는 노동효 후배가 쓴 책 ‘남미 히피 로드’를 읽고 우리가 알고 있는 히피는 잘못된 인식이 너무나 많았단 걸 알았죠, 이제야 ‘아 저들은 수행을 하러 온 사람들이구나’ 하고 깨달았고요. 그 틈에 끼어 사진은 내려두고 나를 돌아보고 저들의 방식, 새로운 정신세계를 배워보고 싶어요. 이번에 돌면서 내가 해낼 수 있을지 가늠해보려고요.”

    도전하고 있는 순간에도 다음 도전을 기약하는 그. ‘사람들에게 말해 놓아야 약속을 지키려는 마음에 뜻을 이룬다’며 여럿에게 목표를 알리고 있다. 나이 여든을 바라보고 있는 그는 젊은이들에게 얼른 어디든 나가보라고 권한다.

    “노동효 작가의 말을 인용하고 싶네요. ‘푸른 영혼일 때 떠나라’고요. 영혼이 젊을 때 말이에요. 더 넓은 세상에 가서 부딪혀 보면 또 다른 세계가 열리니까요. 저도 계속 그러고 싶습니다.”

    글·사진= 이슬기 기자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 관련기사
  • 이슬기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