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시조로 읽는 한국의 석탑] (55·끝) 제천 사자빈신사지 사사자 구층석탑네 마리 사자가 울자 도량은 선정에 들었다
네 마리 사자가 울자 도량은 선정(禪定)에 든다
단 한 번의 사자후(師子吼)가 고요를 불러내다니,
바람도
가던 길 멈추고
반야바라밀 읊조린다
이 석탑은 원래 9층탑으로 1022년(현종 13)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2층 기단에 5층의 옥신석까지만 남아 있고 상륜부는 완전히 파손되어 남아 있지 않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네 마리의 사자가 사자후를 토하며 탑...2020-08-25 08:05:37
[사진과 시조로 읽는 한국의 석탑] (54) 문경 봉암사 삼층석탑통일신라의 단단한 기품은 흐트러짐이 없구나
뭇새들 들고 나는 문경새재 들머리
백운대 마애불은 기다리고 계시는데
오늘도 닫힌 산문은 끝내 열리지 않는다
걸어서 못 간다면 낙엽으로나 불려가지
그곳이 미타찰(彌陀刹)로 이어지는 길이라면
고요히 먼지가 되어 바람에나 실려가지
봉암사는 신라 하대 구산선문의 하나로 신라 헌강왕 5년(879년)에 도헌 지증대사(824~882년)가 창건하였다. ...2020-08-10 21:04:48
[사진과 시조로 읽는 한국의 석탑] (53) 제주 불탑사 오층석탑(보물 제1187호)적흑색 석탑에 밴 고려 해녀 숨비소리
귀 기울이면 절에서도 숨비소리 들릴까
물질 나간 해녀는 돌아오지 않았고
먼 옛날 설문대할망
탑을 돌며 부른다
제주시 삼양동에 위치한 사찰인 불탑사는 여러 모로 의미가 있는 절이다. 원찰인 원당사(元堂寺)는 원제국시대 제주도의 3대 사찰의 하나였다고 한다. 제주 4·3사건 당시 가람 대부분이 파손됐으며 1953년에 재건됐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2020-08-03 21:44:21
[사진과 시조로 읽는 한국의 석탑] (52) 도피안사 삼층석탑피안에 들고 싶은 그대, 이곳으로 오라
피안(彼岸)에 들고 싶다면
화개산 도피안사(到彼岸寺) 가자
깨달음의 언덕을 언제쯤 올라보나
열반은 가까이 있다
“귀를 열어라”고 탑은 말한다
도피안사는 피안의 세계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번뇌와 고통이 없는 경지에 이르고 싶은가. 그런 이상적인 경지가 꿈처럼 요원하다면 남한의 최북단 철원 화개산 도피안사로 가자. 한국 전쟁 이후 군에서 재건하였다는 이...2020-07-28 08:07:14
[사진과 시조로 읽는 한국의 석탑] (51) 무장사지 삼층석탑 (보물 제126호)가만히 역사의 문을 닫고 전설을 걸어 나왔다
적막하다 새벽은 그렇게 더디게 온다
무장산 첩첩산중, 깨진 기와조각처럼
버려진 신라의 한 하늘이 나뒹굴고 있었다
오늘 난 문무대왕의 음성을 들을 것인가
통일의 염원으로 서라벌을 달리던
웅혼한 영웅의 기개를 만날 수 있을 것인가
탑 하나로 오로지 한 겨울 무장사지
간간히 흩날리는 진눈개비가 추워라
가만히 역사의 문을 닫고 전설을 걸어 나왔...2020-07-20 21:42:44
[사진과 시조로 읽는 한국의 석탑] (50) 정림사지 오층석탑백제의 하늘, 이곳에 내려앉았네
백제의 하늘이 내려와 놀고 있다
천년을 떠돌다 온 구름은 떠날 수 없다
조금 전 내렸던 비는 계백의 눈물이다
정림사지는 백제를 따라 걷는 순례지의 필수 코스다. 백제를 대표하는 정림사지 오층석탑, 자연과 어우러진 탑을 상상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시내와 가까워 방문이 용이한 장점도 있다. 번듯한 주차장과 박물관도 ...2020-07-13 20:09:42
[사진과 시조로 읽는 한국의 석탑] (49)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국보 제40호)보아라, 허리 곧추세운 미려한 탑의 자태를
친구여 생의 인연 하나 만나지 못했다면
지상에 흔적 하나 남기지 못했다면
서라벌 별밭에 숨은
미인도(美人圖) 보러가자
도덕산 해 기운다고 발길 재촉마라
왕조 저문다고 눈물 보이지마라
보아라 허리 곧추세우고
이승의 강을 건너는
경주 옥산서원 지나 도덕산과 자옥산 자락, 국보 40호 십삼층석탑은 거기 서 있었다. 어떤 담장도, 제어할 누구...2020-07-06 21:34:01
[사진과 시조로 읽는 한국의 석탑] (48) 밀양 소태리 오층석탑 (보물 제312호)꽃도 지고 탑도 지고 있었다
매화 지고 있었다
탑도 지고 있었다
지지 않는 절보다
지고 있는 석탑이
봄과 더
어울린다고
벗님은 말했다
밀양시 청도면에 위치한 천죽사 경내에 있는 소태리 오층석탑(보물 제312호)은 꽃과 대나무가 함께 어울려 서 있다. 대부분 탑들은 절 한가운데 있거나, 폐사지 공터에 홀로 선 경우가 많은데 이 탑은 꽃나무에 둘러싸여 있어 정겹다. 봄이면...2020-06-29 22:00:45
[사진과 시조로 읽는 한국의 석탑] (47) 함양 벽송사 삼층 석탑 (보물 제 474호)선 채로 천년을 살면 무엇이 보일까
실 나무는 탑이 되고 싶었고
탑은 한 그루 나무이고 싶었다
널 보며 또 다른 나로
돌아가고 싶었다
선 채로 천년을 살면 무엇이 보일까
키 세워 더 멀리 보면 무엇이 보일까
차라리 눈을 감아라
심안心眼마저 꺼버려라
벽송사(함양군 마천면 광점길 27-177)는 혼자 가도 좋고 일행과 함께여도 좋다. 요즘은 제법 알려진 탓으로 관광객들의 발길도 ...2020-06-22 21:52:51
[사진과 시조로 읽는 한국의 석탑] (46) 진주 묘엄사지 삼층석탑사람들아, 제발 날 찾아오지 마시게
사람들아 제발 날 찾아오지 마시게
허허 내게 날개가 없는 줄 아시는가?
방금도 남해에 갔다가 덕천강에도 갔던 걸
묘엄사지(진주시 수곡면 효자리 447-1)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시원하다. 이곳은 서부경남을 대표하는 큰 인공호수인 진양호와 가깝다. 근처 마을들은 수몰되어 사라진 고향의 아픔을 함께한 기억도 있다. 진양호는 덕천강물을 가두었는...2020-06-15 21:52:45
[사진과 시조로 읽는 한국의 석탑] (45) 양양 낙산사 7층 석탑 (보물 제 479호)죽음이 영생의 문임을 깨우쳐 주었다
미친 듯 불기둥이 천지를 덮쳐왔다
훌훌 잿더미를 홀로 걸어 나오며
죽음이
영생永生의 문門임을
깨우쳐 주었다
설악의 끝자락이 동해에 이를 때 만나는 절이 바로 낙산사다. 수평선이 시작되는 이곳 단애에 관음보살이 계셨던가. 그 물음을 안고 의상 대사는 여기까지 찾아왔으리라. 법력 깊은 기도가 통했던지 용에게 여의주와 염주를 받게 되고 “대...2020-06-08 20:28:27
[사진과 시조로 읽는 한국의 석탑] (44) 안성 봉업사지 5층석탑 (보물 제 435호)농투성이 사내 닮은 투박한 손길이 좋더라
늙은 당간지주와
젊고 실한 오층석탑
연지곤지도 좋지만
농투성이 사내 닮은
투박한 손길이 좋더라
그런 사랑이 더 좋더라
안성 봉업사지(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 148-5) 찾아가기 전에 죽산향교 들러 주변을 둘러보았다. 구름에 반쯤 가려진 비봉산 자락이 유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좋은 가람 하나쯤은 있을만한 곳이란 생각이 든다. 폐사지 근...2020-06-02 08:00:41
[사진과 시조로 읽는 한국의 석탑] (43) 원주 거돈사지 삼층석탑
원주 거돈사지 삼층석탑
시인 떠나보내고 탑 구경 간다
물은 물이고 산은 산이라니
소낙비 내려도 좋고
흙먼지 일어도 좋다
시인이 있었고 시 한편이 있었다
이승에서 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옛 절집 흔적 없어도
탑은 절을 지킨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는다. 하긴 남는다고 영원하랴. 아무리 기원이 간절한들 어찌 세월을 이길 것인...2020-05-25 21:32:51
[사진과 시조로 읽는 한국의 석탑] (42)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서라벌 천년의 노래가 이곳까지 들려온다
석탑도 요염한 맵시 뽐낼 때가 있다
밤이면 비단자락 날리며 하늘 오르다
낮이면 짐짓 모른 척 침묵으로 서 있다
팔부신중 구름에 앉아 세상 굽어보고
천인상天人像 기단基壇을 나와 은하에 닿아라
서라벌 천년의 노래가 이곳까지 들려온다
진전사지(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둔전리 산37번지)는 수평선 멀리 동해바다를 향한 곳에 있다. 낙산사 들러 ...2020-05-11 21:46:24
[사진과 시조로 읽는 한국의 석탑] (41) 밀양 표충사 삼층석탑석탑 하나 선 자리가 뭐 그리 중할까
사명대사 이름을 딴 절이면 되었지
석탑 하나 선 자리가 뭐 그리 중할까
이 몸은
요사채 지키는
문지기면 족하다
낙엽 지는 날 표충사 간다. 기실은 억새 보러 재약산 간 김에 절에 들른 것이다. 산에서 내려와 표충사 약샘에서 목을 축인 후 경내를 돌아본다. 이 절 삼층석탑은 좀 특이한 곳에 서 있다. 대웅전 앞마당이 아니고 출입문 안쪽 요사채가 있는 공...2020-04-27 22:0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