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5월 10일 (금)
전체메뉴

[경남 예술인을 담다] (7) ‘옆집 연극인’ 장종도 연출가

“옆집 사람이 겪는 특이한 이야기, 제 연극은 그래요”
창원 극단 미소에서 ‘난파, 가족’ 극작·연출

  • 기사입력 : 2023-04-05 19:44:55
  •   
  • 지난달 개최된 제41회 경남연극제의 주인공은 장종도(40) 연출가였다. 그가 각본·연출을 맡은 극단 미소의 '난파, 가족'이 단체 대상과 관객심사작품대상을 받았고, 개인으로서는 3년 연속 희곡상 수상이란 대기록을 세웠다. 경남에서 22년간 연극 길만 걸은 그가 마침내 우뚝 선 순간이었다.

    장종도 연출의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친근한 그의 모습처럼,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어느 동네에나 있을만한 사람들이다. '옆집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 장 연출이 추구하는 작품의 결은 이 문장을 벗어나지 않는다. 재미는 덤이다. 지난 3일 창원 명서동 도파니아트홀에서 장 연극인을 만나 그의 삶과 예술관을 담아봤다.

    장종도 연출가가 5일 오후 창원시 의창구 명서동 도파니아트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장종도 연출가가 5일 오후 창원시 의창구 명서동 도파니아트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난파 가족'이 '난파, 가족'이 되기까지= 연습 과정에서 내용을 유연하게 수정 가능하다는 점은 연극만이 가지는 특징이다. 극단 미소가 올해 경남연극제에 출품한 '난파, 가족'도 마찬가지다. 작품의 원 제목이 쉼표가 없는 '난파 가족'이었던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작품명은 연극제 개막 직전 변경됐다.

    '난파 가족'은 단순히 난파된 가족을 의미한다. 난파와 가족 사이에 쉼표가 붙자 두 단어가 분리된다. 그제서야 여행 중 배가 난파되는 사고를 겪은 황택수와, 택수의 난파를 바라보는 가족이 대립하는 내용이 제목과 일치하게 된다. 제목 변경은 장종도 연출가가 연습 과정에서 배우와 끊임 없이 소통하며 나온 결과물이다.

    장 연출가는 어떤 안타까운 희생이 발생했을 때 슬픔과 위로보다 돈과 보상에 집중하는 일부 사회에 대한 회의감에서 '난파, 가족'을 쓰기 시작했다. 난파된 가족을 통해 이 사회의 이기심을 보여주고 싶다는 제작 의도는 유지한 채 극단 사람들과 소통하며 세부 설정을 계속해서 수정했다. 그럼에도 수정할 수 없었던 장면은 극 중 하이라이트 부분인 굿판 장면이었다.

    "욕심이 눈덩이처럼 커져갈 때 아이러니하게도 샤머니즘을 찾는 인간의 보편적인 본성이 참 재밌다고 느껴졌어요. 연출 과정에서 정말 많은 신경을 썼죠. 진지하게만 전개하지 않고 유희적인 형태로 풀어 가려고 노력했는데 관객들이 좋게 봐준 것 같아 만족스러워요."

    장 연출가는 '난파, 가족'이 대상을 받게 된 데에는 배우들의 연기가 가장 중요했다고 말한다. 평소에도 연극의 주인공은 배우라고 말하는 그다운 대답이다. 이번 연극제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을 묻자 그는 역시 무대 위에서 배우로 활약한 극단 식구들을 지목했다.

    2012년 장종도 배우가 연극 '바람처럼 달렸다'에서 열연하고 있다./경남신문DB/
    2012년 장종도 배우가 연극 '바람처럼 달렸다'에서 열연하고 있다./경남신문DB/

    ◇희극인 꿈꾸던 청년, 연극인으로 성장하다= 오늘날 장종도 연출은 연극이 인생의 전부라고 말하지만, 22년 전 그는 연극이라면 딱 질색하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당시 그는 희극인의 꿈을 키우고 있었고, 단지 연기실력을 늘리면 희극인이 되는데 도움이 되겠다고 판단해 친구들이 있는 극단에 입단했다.

    "당시 학교마다 연극반이 있었지만 연극은 재미없다고 생각해 보지도 않았죠. 연기학원도 알아봤는데 수강료가 비싸서 극단 미소가 운영하는 청소년 극단 '미소랑'에서 연기만 배우자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8명 정도 있던 단원들이 대부분 그만두면서 저랑 고등학교 친구인 주요한 배우만 남게 됐죠."

    장 연출은 그로부터 1년 뒤 경남연극제 출품작 '고추말리기'에서 단역인 '고릴라인형' 역할로 배우 데뷔를 했다. 4줄 남짓한 대본을 받고 3개월이란 긴 시간 동안 대사를 외우고 수천번은 넘게 연습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첫 평가는 '연기가 아쉽다'였다. 무대에서 내려온 직후 '연극을 그만 둘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하지만 '커튼콜'에서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 소리를 듣고 생각을 완전히 바꾸게 됐다. 단체 관람을 온 명지여고 학생들의 뜻밖의 관심도 연극에 대한 열정을 불피우기 충분했다.

    평생 연극인으로 살기로 결심한 순간은 부산예대에 진학하고 나서다. 여전히 마음 한켠에는 희극인이란 꿈이 남아 있었지만, 연극인이 되겠다고 노력하는 또래 친구들을 보면서 경남 연극인으로 살아가기로 다짐했다. 그때부터 연기 뿐만 아니라 연출·극작 등 연극 전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부족한 연기는 노력으로 메꾸었다. 다른 극단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선배들의 연기를 어깨 너머로 배웠다. 자신의 장점을 살려 정극에 진지한 역할보다는 웃음을 주는 친근한 역할에 집중했다. 선배들의 따끔한 채찍에 상처 받은 적도 있었지만 가끔 주던 당근의 맛을 더 기억하려고 했다. 그렇게 경남 연극계에서 장종도란 이름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장종도 연출가가 5일 오후 창원시 의창구 명서동 도파니아트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장종도 연출가가 5일 오후 창원시 의창구 명서동 도파니아트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연출·극작 인정받으며 전천후 연극인으로= 장종도 연출가의 연출 데뷔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의 첫 연출은 2011년 극단 미소의 경남연극제 출품작 '아비'다. 당시 28살로 연극계에선 다소 빠른 연출 데뷔였다. 극단에서 연출을 전담하던 천영훈 대표의 전폭적인 지지가 뒷받침됐다.

    "21살 때 극단 워크샵에서 연출을 해본 적이 있는데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 산에 올라가 나무를 발로 차고 그랬어요. 그때 천 대표님이 작품을 나쁘지 않게 봤던 게 빠른 데뷔로 이어졌어요. 운 좋게도 연출 데뷔작인 '아비'가 은상을 받으면서 연출가로서 계속 활동할 수 있게 됐죠."

    이듬해인 2012년 경남 연극은 전설을 썼다. 거제 예도의 이삼우 연출가가 극작·연출한 작품 '선녀씨 이야기'가 대한민국연극제에서 대상을 타 서울로 진출했기 때문이다. 선배 연출가의 성공한 모습에 자극받은 장 연출가는 2013년 처음으로 극작에 도전했다. 하지만 호기롭게 극작·연출·연기 모두 소화한 작품 '꽃신'은 그해 연극제에서 입상조차 하지 못했다.

    장 연출가가 극작가로서도 인정받게 한 작품은 그로부터 2년 뒤인 2015년 경남연극제에서 금상과 희곡상을 받은 '세탁소엔 붕어빵이 있다'다. 그는 이후 2016년부터 2023년까지 7년간 경남연극제에서 대상 1개, 금상 3개, 은상 2개, 희곡상 3개를 받으며 전천후 연극인으로 성장했다.

    유독 돋보이는 능력은 극작이다. 극작가 자체가 지역에 흔하지 않은 가운데, 매년 새로운 희곡을 발표하고 좋은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그는 그가 직접 봤던 주변의 인물들과 과거에 했던 생각들로 시나리오를 짠다. 이 과정에서 동료 배우들의 아이디어도 적극 활용한다. 그러나 장 연출가는 스스로를 극작가라 부르지 않는다. 대신 배우들의 의견을 대본에 적용하는 '서기관'에 불과하다며 자신을 낮춘다.

    "처음 '꽃신'을 쓸 때는 1차 대본과 마지막에 수정된 11차 대본이 아예 다른 작품이었어요. 그때는 요령이 없다보니 극단 식구들이 별로라고 하면 하루만에 대본 전체를 새로 써왔는데 천영훈 대표가 새로운 작품이 하루만에 나오니 '미친X'이라 말하기도 했죠.(웃음) 그만큼 많이 노력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극작가란 말이 낯설어요. 저와 저희 극단에 맞는 작품을 찾기가 어려워서 시작한 작업이고,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 다른 매체에서 소재만 참고해서 섞어 만드는 수준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지난 3일 창원 명서동 도파니아트홀에서 만난 장종도 연출가./김용락 기자/
    지난 3일 창원 명서동 도파니아트홀에서 만난 장종도 연출가./김용락 기자/

    ◇극작 보다는 연출에 욕심…제주서 성과 낼 것= 극작은 지도에 길을 그리는 일이고, 연출은 길을 만들고 안내하는 역할이다. 장종도 연출가는 극작가로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연출에 더욱 집중할 계획이다. 극단 미소 식구들을 책임지고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게 연출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쓰고 있는 희곡은 없어요. 사실 내년 연극제에는 극작은 조금 쉴까 하는 생각이에요. 대신 과거 무대에 올렸던 '돈과 호태'를 더 잘 가다듬어 볼까 해요. 연출이 작품에 책임도 져야하는 쉽지 않은 자리지만, 40살이 된 중견 연극인으로서 완장의 무게를 견뎌 내야하는 시기가 온 것 같아요. 앞으로 연극의 미래가 밝지 않다고 하는데, 식구들을 위해 노력하고 변화해 나가야겠죠. 물론 좋은 희곡을 받아 같아 작업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장 연출가는 오는 6월 30일 제주에서 열리는 제41회 대한민국연극제에 경남 대표로 무대에 오른다. 지금은 전국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기 위해 작품이 보다 리듬감 있게 전개될 수 있도록 구성을 수정하고 조명·음향 부분 연출진을 확보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후 5월 말 쯤 경남도민들 앞에서 보다 완성된 무대를 펼쳐 점검해 볼 예정이다.

    "'난파, 가족'은 아직 20대의 날 것같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작품의 깊이를 높여 30~40대의 여유와 진중함을 담아야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 같아요. 미소가 그동안 톡톡 튄다는 평가는 받았지만 실력으로 검증받진 못했거든요. 많은 경남 연극인들이 도와주고 있어서 제주에서는 실력도 있다는 걸 각인시키고자 해요. 더 훗날에는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배 연극인이 되고 싶어요. 더 노력해야죠."

    김용락 기자 rock@knnews.co.kr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 관련기사
  • 김용락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