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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0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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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예술인을 담다] (13) ‘예술과 사람을 잇다’ 홍미옥 도슨트

지루한 예술이 재밌어지는 마법, 제 설명 예술이죠?

  • 기사입력 : 2023-11-23 08: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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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의 작품에는 하나의 세계가 있다. 그 세계를 이끌어내는 것이 예술평론가라면 세계를 사람과 잇는 것이 바로 전시해설가, 도슨트의 역할이다. 예술과 사람을 잇는다면 그것 또한 예술이 아닐까. 경남에서 가장 오랜 시간 전문 도슨트로 활동해 온 홍미옥(64)씨를 만난 것은 그 정립에서 시작됐다.

    대학서 미술전공 후 결혼하며 가정에 헌신
    아들 입대 후 삶의 방향성 찾다 도슨트 꿈꿔
    2014년 도립미술관서 활동하며 ‘인생 2막’
    도내 유일 10년차… 연 3~4차례 전시 참여

    미술 작품 이면의 이야기를 쉽고 흥미롭게 이끌어가는 홍미옥 도슨트 옆으로 또 하나의 얼굴이 연하게 비치고 있다./김승권 기자/
    미술 작품 이면의 이야기를 쉽고 흥미롭게 이끌어가는 홍미옥 도슨트 옆으로 또 하나의 얼굴이 연하게 비치고 있다./김승권 기자/

    ◇경남 유일 ‘10년 차’ 전문 도슨트= 도슨트는 ‘가르치다’라는 뜻의 라틴어 ‘docere’에서 유래했다. 전시에 관한 정보를 습득하고 그것을 가공해 전시를 찾은 관람객에게 설명하며 이해를 돕는다. 2010년대 즈음부터 국내 전시에서 도슨트 활동이 시작됐지만 그 형태는 ‘봉사활동’ 수준에 그쳐 수준 높은 도슨트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시민들의 문화생활에 대한 눈높이가 올라가면서 전문 도슨트에 대한 수요도 늘어나고 최근 수도권에서는 정우철, 김찬용 등이 일약 ‘스타 도슨트’로 떠오르고 있다.

    경남의 프리랜서 도슨트인 홍미옥씨는 지역에서 가장 오랜 시간 전업으로서 도슨트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일 년에 3~4번의 전시에 참여하면서 관람객들을 작품의 세계로 안내했으니 많으면 40개의 전시를 누빈 셈이다.

    같은 전시이더라도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관람객이 받아들이는 세계는 천차만별이다. 이를 위해 홍씨는 참여할 전시가 정해지면 그날부터 작가와 그의 전 작품에 파고든다. 방대한 자료를 이해하며 작품 속에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보다 쉽고 직관적으로 다듬는다.

    “도슨트가 이해해야 관람객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정해진 자료를 무작정 외워서 얘기하는 것보다 내가 이해하고 그것을 잘 풀어서 알려주고 싶었어요. 예술의 세계가 참 깊기 때문에 이 일을 시작하고서 철학, 인문학, 심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죠.”

    그의 도슨트를 들은 관람객들은 칭찬 일색이다. 홍씨의 도슨트 안에는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오로지 작품의 의미나 기법을 설명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작품이 탄생하던 당대의 상황, 작가의 생애와 인간관계 등 전반의 삶까지도 접목시킨다. 사람의 이야기는 사람을 감화시킨다. 작가의 삶에서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눈물을 흘리는 관람객도 있다. 그의 도슨트를 듣고 명함을 받아 가거나 일부러 홍씨의 도슨트를 찾아오는 사람들도 생긴다. 그렇기에 경남에 ‘스타 도슨트’를 대입하자면 홍씨만한 사람이 없다.

    일 시작 후 철학·인문학·심리학 등 공부
    작품 설명에 작가 삶·시대 상황 등 녹여내
    “예술은 불안한 현대인들 치유하는 매체
    사람과 예술 가깝게 만드는 길잡이 될 것”

    ◇인생 제2막, 도슨트로의 삶=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그는 미술학원 교사를 하며 교직으로 갈 기회도 있었지만 결혼을 하면서 모든 청사진은 종지부를 찍게 됐다. 홍씨는 그 선택에 순응하고 오랜 시간 가정에 헌신했다. 그러나 10여 년 전, 아들이 군에 입대하고 혼자 남은 집이 더 넓게 느껴질 무렵에 그의 마음에 변화가 생겼다.

    “이렇게 살다가 끝인가, 이게 내 삶의 전부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기 싫었죠. 오로지 가정을 가꾸는 것에만 멈춰있던 삶의 방향성을 ‘나 자신’에게 집중하기로 그때 마음먹었습니다.”

    미술을 전공해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서울과 부산 곳곳에서 전시를 보러 다녔던 홍씨는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자원봉사를 하게 됐는데, 그때 경남의 도슨트를 처음 보게 됐다. 그들을 보면서도 자신이 더 잘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해 도슨트로 면접을 봤지만 아쉽게도 중년의 홍씨 대신 젊은 청년들이 뽑혔다.

    “처음 접했던 경남의 도슨트들은 어린 청년들이었는데, 큐레이터가 써주는 내용을 암기하는 수준이었어요. 내용도 어렵고 지루했죠. ‘나라면 더 잘할 텐데’ 하는 마음으로 지원했지만, 준비가 부족해서 떨어졌죠.”

    홍씨는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았다. 꾸준히 준비하다 2014년에는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진행했던 ‘사물의 모험-아르망의 아틀리에’에 도슨트로 활동하게 됐다. 갈증이 컸던 만큼 밤을 새워 노력했고 그의 도슨트를 들은 관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전시 리뷰에 ‘도슨트’에 대한 극찬이 가득했다. 그 활약으로 홍씨는 도립미술관 전문 도슨트에도 지원해 뽑혔다. 1년 계약직이었지만 충분했다. 앞으로의 목표가 정해지니 눈앞이 흐릿하기만 했던 과거와 달리 모든 것이 뚜렷해졌다. 그의 인생 2막은 그때 시작됐다.

    ◇예술은 치유의 매체… 전문 도슨트 많아졌으면= “최근에야 오랜 시간 도슨트를 해온 보답을 받는 것 같아요.” 홍씨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창원조각비엔날레 도슨트로 활동했지만, 참여한 지 4회차가 되던 해가 돼서야 표창장을 받았고 올해는 도슨트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한 글공부에 성과를 보이듯 3·15의거 전국백일장에 장원을 했다.

    스타 도슨트가 탄생한 서울에서는 ‘직업으로서의 도슨트’의 가치가 열리기 시작했지만, 지역에서는 아직 먼 길이다. 10년 내내 미디어에 그의 사진이 나간 적은 있었으나 ‘도슨트가 설명하는 모습’이 전부였다. 큰 전시의 끝에서는 서울에서 온 젊은 도슨트가 홍씨 대신 전면에 나섰다. ‘도슨트 홍미옥’으로서의 인정을, 이제는 받은 것 같다고 그가 말했다.

    “페이가 적으니 특히나 젊은 사람이 시도하기 쉽지 않아요. 하더라도 3개월 단기로 하고 다른 직업을 찾게 되죠. 다른 직업처럼 계속 성장해 나가는 건데, 이어지지 않아 아쉬운 마음이 많아요. 서울은 전시도 많고 큰 갤러리들은 도슨트도 채용하지만, 지역은 그렇지 않아서 도슨트에 대한 인식도 더 저조합니다.”

    기술과 환경이 빠르게 바뀌는 사회 안에서 사람은 언제나 불안을 겪는다. 기성세대는 종교를 믿으며 불안감을 해소했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는 다르다. 그렇기에 홍씨는 예술이 현대인들을 치유하는 매체라고 생각한다. 특히 비구상 위주의 현대미술이 발전해 나가는 현 예술계에서 전문 도슨트는 필연적이라는 얘기다.

    “전시가 끝날 때마다 공부를 위해 해외로 떠나요. 프랑스 등 유럽의 선진국에는 어릴 때부터 박물관이나 미술관 근처에서 노는 게 생활이죠. 우리나라 아이들도 예술을 즐기기 위해서는 알아야 할 텐데, 예술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죠. 그렇기에 도슨트가 필수적인 것 같아요. 우리는 예술과 사람을 가깝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예술과 사람을 잇는 일은 이제 직업을 넘어선 숙명이 됐다. 그가 다음으로 도전할 전시는 창원문화재단에서 진행할 ‘로즈와일리’ 전이다. 영국의 화가인 로즈와일리와 홍씨는 결혼을 하면서 예술의 꿈을 포기했다가, 늦은 나이에 다시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했다는 점에서 닮은 점이 있다.

    “로즈와일리는 중년의 나이의 예술학교에 입학하고 노년이 돼서야 세간의 인정을 받았어요. 예술에 대한 사랑은 나이가 중요치 않죠. 도슨트 활동도 제가 움직이고 말할 수 있는 한 계속해서 이어 나가고 싶습니다.”

    어태희 기자 ttott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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