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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예술인을 담다] (5) ‘남해서 찾은 새 삶’ 권월 음악가

“따스한 음악 통해 지친 청년들 치유 받았으면”

  • 기사입력 : 2023-02-26 19:3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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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해에 한 청년 음악인이 있다. 파도와 윤슬, 하늘 위 새와 밤하늘의 별, 마을주민들의 목소리와 따스한 햇볕. 그가 봤던 남해의 모든 것은 손끝을 거쳐 따스한 선율로 탄생한다.

    권월(32) 음악가의 삶은 특이하다. 영국 유학 후 서울에서 대중음악 활동을 하며 음악성을 인정받았다. 성공을 갈망했기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음악에만 몰두해야만 했던 그는 현시대 청년들의 무너지는 자화상이었다.

    세상에 대한 회의감, 삶의 공허함, 내면의 우울감에 훌쩍 떠난 곳은 어떠한 연고지도 없던 남해. 한달살기로 시작했던 남해에서의 삶은 그렇게 2여년간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경남의 예술인이 된 권월의 삶을 지난 23일 남해 상주에서 담아 봤다.

    2년 전 한달살기로 남해에 왔다가 남해에서 계속 음악활동을 하고 있는 권월 음악가./김용락 기자/
    2년 전 한달살기로 남해에 왔다가 남해에서 계속 음악활동을 하고 있는 권월 음악가./김용락 기자/

    ◇'히사이시 조'와 '반 고흐'= 권월은 영화 음악감독을 꿈꿨다. 인천에서 학창시절을 지낸 그는 고등학교 때 히사이시 조 같은 훌륭한 음악감독이 되기로 결심하고 영국 런던의 예술대학인 골드스미스 대학교 음악과에 진학했다.

    2013년 졸업 후 한국에 돌아와서는 대중음악 활동을 시작한다. 2인조 그룹 '포워드(F.W.D)'에서 그는 보컬과 피아노 연주를 맡아 무대에 올랐다. 이때 발매한 첫 앨범 'AIR'의 곡 'KOTIN'은 2015년 한국대중음악상 댄스&일렉트로닉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면서 음악성도 인정받는다.

    "대학 졸업을 하고 한국에 와서 내 음악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하던 중 '성공한 락스타'가 되자는 마음으로 무작정 뛰어들었죠. 곡이 노미네이트도 되고 했지만 앨범을 발매하고 군대에 입대했었기에 실감을 하지 못했어요. 전역 후에는 음악적 성취를 채우고자 솔로 활동도 병행했습니다."

    권월은 담담하게 그때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그에겐 어두웠던 기억들이다. 2018년 첫 솔로앨범 '권월 權越'을 냈지만 반응은 생각보다 미적지근했다. 음악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주 6일 어학원 영어강사, 음악강사 일을 병행하며 음악 활동을 이어가던 중 큰 사고가 그에게 찾아왔다.

    "전동보드를 타고 가던 중 정말 작은 턱에 걸렸어요. 뛰어서 잘 착지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래를 보니 한쪽 발목이 완전히 접혀 있었죠. 치료와 수술 준비 때문에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한 달을 병원에 누워 있어야 했어요.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삶을 되돌아보니 음악을 많이 못 한 것 같다고 생각했죠. 더불어 음악인으로 성공해야 한다는 주변의 시선을 극복하고, 반복되는 일상에서 오는 회의감을 덜어내고자 퇴원 후에는 100일간 집에서 곡만 만들었어요."

    하지만 음악에 대한 그의 광적인 집착은 그를 갉아먹었다. 곡을 만들고 앨범을 발표할 때는 성취감이 강렬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장려상을 받는 등 원하는 성과를 냈음에도 다음 목표를 세워 자신을 태워야만 삶의 공허함과 우울감을 잊을 수 있었다. 음악은 그에게 전부였지만, 이대로라면 단명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무너지고 있었다.

    "히사이시 조, 존 윌리엄스 등 유명한 음악감독을 꿈꿨지만, 어느새 제 롤 모델은 반 고흐가 돼 있었어요. 음악이 살아갈 명분을 찾기 위한 발악이자 집착이 된 상황에서, 죽어서라도 제 앨범의 평가를 높이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죠."

    지난 23일 남해군 상주리에서 만난 권월 음악가./김용락 기자/
    지난 23일 남해군 상주리에서 만난 권월 음악가./김용락 기자/

    ◇'삼동면'과 '은모래해변에서'= 그때 머릿속에 '바다'가 떠올랐다. 도심에서만 살아오던 그에게 바다는 새로운 영감이 될 것 같았다. 남해는 어떠한 연고도 없는 곳이었다. 전남 여수로의 가족여행 중 남해 해안가를 잠깐 지나간 것이 전부였다. 오직 자연과 이국적인 풍경이 그를 이끌었다. 2021년 4월 그는 남해 삼동면의 한 숙소를 한달간 예약했다. 이후의 계획은 없었다.

    음악만이 유일한 삶의 이유이기에 단명을 꿈꾸던 그의 사고는 남해에서의 둘째 날 아침 바다 일출을 보며 산산이 부서졌다. 남해의 일출은 너무나 쉽고 명료하게 그가 살아야 할 이유를 알려줬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는 음악 때문에 산다고 생각했는데, 답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 순간 알게 됐어요. 아, 살아 있기에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구나. 이런 모습을 계속 보기 위해 더 오래 살아야하는 거구나. 그때부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바뀌었죠."

    그동안 그는 과거 인연이 깊은 것과 장소를 생각하며 작곡을 했다. 불만족스러운 현실 속에서 과거와 추억에 집착한 그의 노래는 아련하고 그리워하는 감성이 짙었다.

    그런 그는 지금, 남해에서 현재를 작곡하고 있다. 남해에서 발표한 '삼동면(2021년 12월)'과 '은모래해변에서(2022년 8월)' 등 2개의 앨범은 그전 앨범과 비교하면 분위기의 변화가 극명하게 느껴진다. 남해 지명이 제목인 앨범들은 파도 소리, 마을이장의 방송 등 일상 속 소리를 바탕으로 피아노·첼로·오보에 등을 연주한 곡들로 구성돼 있다.

    '삼동면'은 펜션에서 한달살기를 하면서 느낀 자연의 신비로움과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함, 새출발의 의미를 담은 앨범이다. 권월은 도시 감성의 사람이 캡슐 속에서 남해를 바라보는 느낌을 담았다고 한다. '은모래해변에서'는 여름을 주제로 한 시리즈 기획앨범으로 직접 몸으로 부딪치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누구나 공감하는 공통된 이야기를 담아냈다고 설명했다.

    "음악의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기억에 남는 평은 '잿빛에서 점점 초록빛으로 변하가고 있다'는 말이네요. 서정적인 분위기는 비슷할 수 있지만 이전 음악들은 우울로 향했다면 지금은 희망과 포용으로 향해있다고 느낍니다."

    지난 23일 남해군 상주리에서 만난 권월 음악가./김용락 기자/
    지난 23일 남해군 상주리에서 만난 권월 음악가./김용락 기자/

    ◇'삶의 위안'과 '관계의 소중함'= 권월은 계속 남해에 거주할 계획이다. 2021년 사비로 한달을 보낸 후 남해군의 '한달살기 프로젝트'에 참가해 남해에 머물렀고 결국 정착을 결심했다. 부동산 어플도 활성화 되어 있지 않아 상주면장과 마을이장 등의 도움을 받아 한 펜션 원룸에서 1년을 지냈고, 2022년 7월부터는 상주면 상주리의 한 오래된 집에서 머물고 있다.

    남해에 오고 와서야 그는 비로소 음악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앨범 '은모래해변에서'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하면서 SNS상으로 굿즈도 판매해 큰 호응을 받았다. 관광객들을 대상으로는 작곡 원데이클래스를 진행하고, 남해지역 음악인들과 함께 공연 행사도 활발히 해오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DDP 등 외주 의뢰도 꾸준히 이어지는데, 남해 작업실에서 불편 없이 곡 작업을 하고 있다.

    그가 남해에 오고 와서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은 사고방식이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짙었던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게 된 것은 공동체적인 삶이다. "누구보다 개인주의적인 사람이었지만, 남해에 오고 와서 사람은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풍경 때문에 왔어도 사람 때문에 남는다고 했는데 맞다고 생각해요. 남해는 나를 살려준 곳이다. 여기서 만난 사람들이 소중하고, 배운 것들이 소중하네요."

    권월은 현재 '은모래해변에서(사람들)' 앨범을 준비 중이다. 그전 '여름' 시리즈가 상주의 첫인상과 아름다움을 이야기했다면, '사람들' 시리즈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중함과 보살펴주고 같이 가려고 하는 마음을 담을 계획이다. 그의 영감은 이제 일상적인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온다.

    처음은 요구사항에 맞는 음악을 만드는 기능적인 면이 우수한 영화 음악감독을 꿈꿨다. 한국에 와서는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세련되고 도시적인 아티스트가 되고 싶었다. 지금도 그 꿈은 유효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앞서는 건 쉽게 간과하는 '소중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제 음악을 듣고 공감과 유대의 감정이 느껴졌으면 좋겠어요. 공허함, 우울감 같은 막다른 벽을 느끼는 분들에게 삶의 위안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소중함을 다시 느끼게 되길 바라요. 라디오 주파수처럼, 그런 분들에게 저라는 존재가 하나의 커뮤니티가 돼서 용기를 주고자 합니다."

    이날 상주은모래해변에는 피서객들이 붐볐다. 모래사장 위를 뛰어노는 아이들, 돗자리를 펴고 꽁냥꽁냥하는 한쌍의 연인, 바다로 입수하는 청년들, 마실 나온 동네 할머니. 권월의 음악에서 느낄 수 있었던 사람들이다.

    김용락 기자 rock@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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