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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순신 외사촌 변존서, 합천 두방리 왜 갔나- 박갑로(영남이순신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 2024-02-14 19:4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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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는 임진왜란사와 이순신을 연구하고 있는데, 현재는 ‘명량해전 참전자 연구-문중과 혼맥’이라는 자료를 만들고 있다. 올해 책을 낼 계획이다. 1주일 전, 우연히 이순신의 외사촌인 변존서의 자료를 보고 있는데, 처외조부 탐진 안씨 안충이 눈에 띄어 가계를 추적했다.

    변존서의 장인은 능성 구씨 구용(具鎔)인데, 아들이 없고 사위가 아들 역할을 대신했다. 난중일기에는 백의종군 무렵 마흘방(馬訖坊)이 3번 기록돼 있다. 현재 지명은 합천 적중 두방이다. 두방에는 안충의 조카가 살아 있었는데, 바로 의병장 뇌곡 안극가이다. 아들 안각·안철과 함께 3부자는 의병도대장 송암 김면 막하의 좌의병장 망우당 곽재우와 우의병장 내암 정인홍 막하에서 함께 참전하기도 했다.

    안충의 족보와 가계를 보면서 귀중한 정보를 많이 얻었다. 첫째, 변존서의 처이모부가 배인범인데, 바로 이순신의 오른팔 배흥립의 아버지이다. 즉 변존서의 처와 배흥립은 이종 남매간임을 확인했다.

    둘째, 안극가는 퇴계 문인인 대사간 사천 이씨 구암(龜巖) 이정(李楨)의 문인이다. 구암의 손자 백인재 이곤변이 난중일기에 여러 번 등장한다. 백인재의 손서에 오리의 손자 이수기가 있고, 오리의 손서이며 남인의 영수 미수 허목의 동생 허의가 또한 백인재의 손서이다. 안극가의 외조부가 의령 남씨 남지(南至)이고, 이호변·이곤변 형제와는 이종 4촌이다. 그런데 체찰사였던 오리가 안극가의 행장을 쓴 것을 ‘탐진세고’에서 확인했다.

    셋째, 뇌곡의 맏손자인 안재후의 처부가 성천지(成天祉)인데, 난중일기에 해남가장과 진도군수로 등장한다. 필자가 수년 전에 창녕 성씨 족보를 일별했으나, 성천지의 사위 안재후의 자료가 없어서 확인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확인하였다. 함께한 장졸들의 떨어지는 눈물을 모아 피로 적은 것이 난중일기이다.

    넷째, 안극가 가문은 노블리스 오블리주 이념을 실천하여 의병에 헌신했다. 그리고 합천의 전치원, 거창의 정응두 의병장 가문과 혼인을 맺었다.

    -난중일기- 1597년 6월 24일. 생원 안극가(安克可)가 와서 보고 시국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6월29일 변주부가 마흘방으로 갔다가 돌아왔다. 7월 4일 아침밥을 먹을 때 안극가(安克可)가 와서 봤다. 7월5일 변존서가 마흘방으로 갔다. 7월 6일 변존서가 마흘방에서 돌아왔다. 안각·안철 형제도 변흥백(卞興伯)을 따라왔다. 7월 7일 아침에 안각 형제가 와서 봤다.

    7월 5일 변주부는 처가인 마흘방을 두 번째 방문하여 하룻밤을 자고 왔다. 마을에서 돼지 한 마리도 잡지 않았을까? 떠들썩한 처가 동네 잔치가 눈에 선하다. 합천과 적중면 두방리에 마을 축제를 만들면 참 좋겠다. 군관 변주부로 분장한 사람이 돼지 한 마리를 몰고 외가(축제장)에 들어가는 퍼포먼스도 만들어 보시라. 의병축제 때 활용해도 된다. 마흘방(두방) 입구에 마을안내판을 세우자.

    박갑로(영남이순신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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