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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산소를 다녀왔다. 가을이 지나간 길섶 빈 가지에 울음처럼 맺힌 붉은 열매가 눈에 시렸다. 노송 숲 사이를 빠져나온 바람이 종굴박 같은 무덤 사이로 오래된 시간으로 흐른다. 제 몸을 닳고 닳아 등 굽은 숫돌이 된 것처럼 자식들에게 한없이 등받이가 되어준 사람이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동안거에 들어간 수도승처럼 오늘도 아무 말이 없다. 긴 겨울날 같았던 생을 낯설게 보낸 그리움의 허기가 그림자처럼 내려앉는다. 아버지란 이름은 그저 바라만 봐도 마음의 위안과 평온을 얻는다
정연한 내재율과 정돈된 함축미가 좋아 시조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 짧은 문장 속에서도 이치와 경우를 논하고 풍미와 격의를 다룬 것이 마음에 들었다. 자유분방에 앞서 절제와 규칙이 오히려 매력적이었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도 달고 단 무화과처럼 청안시를 갖춘 시조작품을 보면 그 명징함에 가슴이 울렁거린다. 삶의 보편적 가치를 탐구하고 농촌의 정서적 공감대를 소재로 작품활동을 하고 싶다. 다문다독다상량(多聞多讀多商量), 홀로 습작의 과정이 힘들었지만 늦깎이로서 설레고 두려운 마음으로 시조의 텃밭을 정성껏 일궈 나가겠다.
당선이 되어 기쁘기 그지없다. 아람 벌어져 굵다란 밤송이 하나 손에 쥔 것 같다. 한 편의 글이 사람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연금술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부모님에 대한 효의 마음이나 공유(恭惟)를 가져오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경남신문 신춘문예가 참신하고 도전적인 작가 등용문인 것을 알기에 그 이름값을 하지 못할까봐 벌써 두려움이 앞선다. 코로나로 힘든 시기지만 관심과 격려를 북돋아 주는 사람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모든 분께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시조 부문 당선자 허정진 씨 △1958년생 △함양 출생, 창원 거주 △단국대 사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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