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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4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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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사람들, 모두함께] 사회에서 다친 맘… 살기 위해 닫은 문

#1 은둔형 외톨이 ① 난 오늘 떠날 거라 생각했어

  • 기사입력 : 2024-03-03 20: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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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외된 사람들이 있다. 지역사회가 성장과 생존을 이유로 야멸차게 외면한 사람들. 소외는 소멸로 향한다. 다른 사람 이야기가 아니다. 대서울 시대, 우린 이미 소외된 사람들 아닌가.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글로 된 집을 짓는다. 이곳에서 이뤄질 공감과 위로가 앞으로 나아갈 힘이 되길 바라며.

    처음으로 함께 집을 짓기로 한 이는 ‘은둔형 외톨이’들이다. 은둔형 외톨이는 친구가 한 명 혹은 한 명도 없거나, 가족 이외의 사람과 친밀한 인간관계 없이 3개월 이상 사회 참여를 하지 않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살아가기 위해 없음을 택한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기자의 이야기= 어디다가도 말 못 한 이야기가 있다. 학교폭력을 당했지만 소심한 탓에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했던 소년. 꿈 없이 살다가 부모님이 원했기에 공무원 공부를 시작한 청년. 되고 싶은 게 없음을 자각한 23살, 자포자기와 무기력으로 가득 찬 마음. 그렇게 사회에서 사라졌던 1년이 있었다. ‘은둔형 외톨이’. 이 단어는 그 때의 기자를 정의한다.

    불규칙과 회피의 연속이었다. 밤새 깨어있다가 가족들이 출근한 이후 잠들었다. 그러다 퇴근시간에 맞춰 일어나 PC방, 도서관 혹은 거리를 떠돌았다. 홀로 멈춰있다는 자격지심에 친구들과의 연락도 끊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을 실시간으로 읽고 있었고 게임과 만화, 음악 등에 빠져 지냈다. 현실에는 철저하게 없는 사람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약해져갔다. 고통이 싫었고 도전이 싫었다. 머물고 싶었고 멈추고 싶었다. 세상으로부터 떠나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반복되는 이런 생활 속에서 이미 죽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막다른 길에서 선택한 ‘고립’

    학교폭력·취업 실패 등 계기 다양
    우울·자격지심 등 느껴 관계 단절
    집 안에서 장기간 사회활동 미참여


    ◇그들의 이야기= 은둔 10년차인 희수(30대 중반·남·가명) 씨는 기자의 이야기를 유독 공감했다. 그 또한 공무원 시험에 수차례 떨어진 것이 은둔 생활의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스스로에 대한 실망이 커지자 주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시선이 느껴졌고 은둔을 택하게 됐다.

    “밖으로 못 나가겠어요. 예전엔 친구가 많았지만 지금은 어쩌다 전화 통화만 해요. 만나면 할 이야기도 없고,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도 않아요. 혼자 있으면 자유롭고 정신건강에도 이로워요. 카톡 오픈 채팅으로 대화하거나,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데 어떤 목적은 없어요.”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계기는 다양하고 복잡하다. 지원(20대 후반·여·가명) 씨는 첫 직장에서 이성적으로 접근해 온 상사에게 불편함을 느껴 퇴사한 이후로 5년 이상 집에만 머물고 있다. 정수(30대 중반·남·가명) 씨는 중학교 때 학교폭력을 당한 후 피해의식과 사람에 대한 두려움으로 10여년째 칩거 생활을 해오고 있다.

    정수 씨는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렵고 무서워서 집 근처 편의점도 밤에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가는 편”이라며 “오랫동안 고립돼 지내다 보니 사회생활이나 취업은 생각도 못 하고 있어요”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들의 사회는 철저한 비대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원 씨는 식재료나 생필품은 온라인을 통해서만 구매한다. 취미는 유튜브 시청과 오픈 채팅방 활동이 전부다. 그 중 오픈 채팅방은 타인과 교감하는 유일한 통로가 된다. 지원 씨는 얼굴을 보거나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없지만, 채팅은 그 벽을 허문다. 지훈(30대 중반·남·가명) 씨도 외로울 때에는 ‘익명의 은둔형 외톨이들의 모임’ 채팅 채널을 통해 위로를 받곤 한다.

    이들은 부모님과 동거하는 경우도, 혼자 사는 경우도 있지만 부모님과는 대체로 사이가 좋지 않다고 했다. 부모님과 함께 거주하는 정수 씨는 “제 의견이 맞다고 생각해 주장을 많이 하는데 받아 들여지지 않으면 화가 많이 나요. 늘 똑같은 충고나 조언은 듣고 싶지 않아요”라고 토로했다.

    부모님의 잔소리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희수 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도 상담을 받아 자신을 이해해 주길 바랬다.

    “부모님이 부유해 부족함 없이 같이 살고 있어요. 하지만 이런 제 모습을 남들이 알까 봐 걱정하며 이래라저래라 잔소리를 해요. 그러면 오히려 아무것도 하기 싫어져요.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담을 받고 있는데, 부모님도 저를 이해하도록 상담을 받았으면 해요. 가족들과 잘 지내고 싶어요.”


    사회문제로 확대

    복합적 요인들로 규모·기간 늘어
    정부 추정 50만여명…실제 더 많아
    극단적인 경우 반사회적 행동 표출


    해결 방안은 ‘함께’

    만성화된 은둔 벗어나려는 이들 많아
    “사회로 돌아가고 싶은 의지 보여
    지역사회가 더욱 관심 갖고 도와야”


    ◇사회현상 아닌 사회문제= 은둔형 외톨이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나 있어 왔다. 1990년대 중반 IMF, 또는 2000년대 초 저성장시대 당시에도 경쟁 사회에 지친 청년들이 은둔을 선택했다.

    오늘날 은둔은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규모와 기간 측면에서 확대된 특징을 보인다. 현재 정부가 추정한 은둔형 외톨이 수는 50만여명. 그러나 전문가들은 실제 은둔형 외톨이 규모는 더 클 것이라 말한다. 급증한 은둔형 외톨이를 1인 가구 증가처럼 단순한 사회현상으로만 바라봐서는 안된다. 대다수 은둔형 외톨이는 행복하지 않고, 현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벗어나고 싶어한다. 소통이 단절된 은둔은 좌절, 우울, 절망을 낳고 삶과 생명을 갉아먹는다. 일부 극단적인 경우 반사회적 행동으로 표출될 수도 있다.

    문제를 해결할 방향은 ‘함께’에 있다. 이들이 사회로 다시 나아갈 수 있도록 모두가 도와야 한다. 실제로 은둔이 만성화된 이들은 부정적 정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구조요청을 보내고 있다.

    현수(30대 후반·남·가명) 씨는 “알맞은 취업 기회가 있다면 직장 생활을 하면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서도 “오랫동안 집 안에만 있다 보니 구직을 시도하는 것 자체도 힘들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동안 사회는 이러한 구조요청을 외면해 왔다.

    경남지역 은둔형 외톨이를 연구한 현외성 경남평생교육원구원 원장(전 경남대 교수)은 “지역사회가 은둔형 외톨이에 보다 더 관심 가져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사회로 돌아가고 싶은 의지가 있기 때문”이라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외로움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관심으로 밀어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용락 기자

    ※기사 중 은둔형 외톨이의 이야기는 경남도의회의 ‘경남도 은둔형 외톨이의 실태파악과 정책적 지원방안’ 보고서에 담긴 은둔형 외톨이 인터뷰 대상자들의 답변을 토대로 재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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