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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8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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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한 안부 인사, 시어로 토닥이다

[책소개] 당신에게 도착하지 못한 말

  • 기사입력 : 2023-12-27 08: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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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영 활동 강재남 시인, 시에세이집 출간
    스물다섯 나이로 떠난 딸 김희준 시인 등
    소중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말 오롯이 담아
    함께 읽고 싶은 시 69편과 단상 등 수록

    왜인지 ‘엄마’는 늘 눈물버튼이었는데, 엄마가 되고 난 지금은 그 버튼이 하나 더 늘었다. ‘아이’다. 해준 것보다 못해준 것만 생각나는, 생각만 해도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주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아프다는 것은, 없다는 것은 생각도 하기 힘들다. 품에 안으면 부서질 듯한 세 살 아이가 열경기를 일으키던 날을 기억한다. 해열제를 먹였으므로 대수롭지 않게 아이를 쳐다보던 나를 기억한다. 몸이 느닷없이 흔들리고 반짝이던 눈이 까매지던 아이를, 애써 침착하게 안아들고 응급실을 가는 내내 ‘너를 잃을 수 없다’ 되뇌었었다.


    통영에서 활동하는 강재남 시인이 낸 시에세이집 ‘당신에게 도착하지 못한 말’이 사무친다. 스물다섯 해를 함께했던 시인의 아이가 2020년 여름 느닷없이 소식이 닿지 않는 곳으로 떠났을 때 그의 마음이 어땠을지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읽고 싶은 시 69편과 그 시들을 바라본 시인의 단상을 담은 책 곳곳에서는 이제는 마음을 전할래야 전하지 못하는 곳으로 떠난 딸, 고 김희준 시인에 대한 못다한 마음들이 오롯하다.

    ‘자장가는 단순하게 아기를 재우는 것이 아니란 걸 아이를 보내고 알았습니다. 청년이 된 아이를 떠나보내고 나도 모르게 자장가를 불렀습니다. 자장가는 영영 깨지 않을 아이에게 깊고 포근한 잠을 자게 하는 진혼곡이란 걸 왜 이제야 알았을까요. (중략) 네 귀에 수면의 묘약을 흘려보냅니다. 네 살던 세상 같은 건 잊고 필사적으로 달콤한 잠에 들어라. 너의 별에서 이 슬픈 자장가를 불러주는 이는 없어야 한다. 아가야.’ - 정철훈의 ‘까자끼 자장가를 들으며’를 읽고

    시인은 딸뿐 아니라 친구와 부모님 등 곁을 떠난 소중한 사람에게 남겨진 마음을 전한다. 이승희의 ‘여름에게 하고 싶은 말’을 읽으며 딸을 떠올렸다. “‘어느 시인은 여름이 좋다고 했다. 거짓말 같았다’ 말하던 사람은 스물다섯 해를 지구에서 머물렀어요. 그리고는 다음 해 여름에 거짓말같이 자기의 행성으로 떠났지요. 유난히 여름을 좋아하는 시인을 좋아한 어린 시인은 정작 여름이 싫어 여름에 떠났습니다. 여름은 거짓말과 동의어가 아닐까, 잠깐 생각에 빠집니다.”

    그는 문태준의 ‘망인’을 읽으며 ‘흐릿한 빛이 사그라지면서 또 하나의 객지가 저무는 게 선명해서 서러운 날’을 보내고, 고경숙의 ‘첩실기’를 읽으며 ‘화물차 한 량을 온몸으로 받으며 누워있는 새벽. 문창으로 달빛이 쏟아’지고 ‘적멸보궁이 눈앞에서 흔들’린다. 손택수의 ‘거미줄’에서 새끼를 건드리면 먼 곳의 어미가 경련을 일으킨다는 부분을 읽은 시인은 ‘새끼를 보호하는 일에 어떤 것을 구분해야 할 일은 무엇도 없’다며 ‘어디 아픈데 없냐, 이쪽에서 저쪽까지 물음이 이어’진다.

    시인은 책 앞머리 시인의 말에 ‘기별을 보내도 감감한 희준에게 무소식을 무소식이라 여길 테니 너는 너의 일을 하라는 말을 놓는다. 그리고 나는 최선을 다해 웃어보면서 나비가 되어야겠다. 해바라기가 되어야겠다. 따뜻한 첫눈이 되어야겠다’고 적었다. 엄마가 여전히 가슴 아파한다면 엄마 곁을 떠나지 못할 딸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잘 살다가 다시 만나자는 다짐이다.

    ‘모진 풍파에 몇 번이나 흔들렸을 뿌리를, 근심으로 떨구었을 잎으로, 사람의 나이테를 그립니다. 눈가에 자글자글한 실금이 고단함을 말해주네요. 그럼에도 엄마는 그런 것 같아요. 생의 질곡에서도 자식을 생각하면 미소가 먼저 번지는 것요, 비바람이 강해도, 생채기 난 마음에서 피가 흘러도, 엄마여서 괜찮아 하는 것요.’ - 양진기의 ‘헛나이테’를 읽고

    저자 강재남, 출판 달을쏘다, 140쪽, 가격 1만원

    김현미 기자 hm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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