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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1005) 무용부유(無用腐儒)

- 쓸모없는 썩은 선비

  • 기사입력 : 2023-11-28 08: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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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방한학연구원장

    유교(儒敎)에서는 교육을 중요하게 여긴다. 3000년 전 주(周)나라 때부터 국가를 세우면 서울에 대학(大學)을 세우고, 각 고을에 소학(小學)을 세워 교육하였다. 대학은 지도자의 학문을 가르치는 학교였다. 소학은 지방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학교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서기 372년 고구려(高句麗)에서 국학(國學)을 세워 교육하였고, 각 지방에는 경당(堂)이라는 학교를 세워 교육하였다.

    조선시대(朝鮮時代)에는 국학을 성균관(成均館), 각 고을 학교를 향교(鄕校)라고 불렀다.

    조선시대 향교는 국가 교육기관이었으므로 고을원이 책임자였다. 향교 하나를 유지하는 데 엄청난 비용이 든다. 국가 재정이 빈약하던 그 시대에도 인재 양성과 백성 교화를 위해 정성을 쏟은 일은 조선왕조가 문화국가가 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향교에는 국가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관원을 파견했다. 부(府)나 목(牧) 같이 큰 고을에는 종6품직인 교수(敎授)를, 군(郡)이나 현(縣) 같은 작은 고을에는 종9품직인 훈도(訓導)를 파견하였는데, 기능은 같았다.

    1910년 나라가 망하자, 일본인들이 성균관을 경학원(經學院)이라는 명칭으로 바꾸고, 책임자로 친일유림(親日儒林)들을 불러다 앉혔다. 일본과 조선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일선동화론(日鮮同化論)을 부르짖는 친일 앞잡이 단체로 전락했다. 대부분의 향교도 친일단체의 부속기관이 되었다.

    1945년 해방이 된 뒤, 독립운동가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 선생이 다시 성균관이라는 명칭을 회복하였다. 향교가 더 이상 관청 소속이 아니므로 책임자가 필요하여, 전교(典校)라는 자리를 새로 만들었다. 초기에는 학문과 덕행을 갖춘 선비들이 전교로 추대되었다. 후대로 올수록 자질이 점점 떨어져 간다. 전교가 되어서는 전혀 안 될 유교에 대한 교양이 전혀 없는 자들이 감투라고 생각하고 자리를 탐내는 경우가 많다.

    1956년에 이르러 친일유림들이 김창숙 선생을 몰아내고 다시 성균관을 차지하여 명예를 추락시키고, 그 많던 재산도 다 없앴다.

    조선시대에는 전국에 360개의 향교가 있었다. 지금은 남한에 234개의 향교가 있다. 전교를 선임하는 방식이 향교마다 다 다르다. 합의에 의하여 학문과 덕행을 갖춘 전교를 뽑는 곳도 많이 있다.

    최근 선비의 고향이라는 경상도 어떤 고을에서 전교 투표를 하였다. 두 사람의 후보 가운데 학식과 인격을 갖추어 전교감이라는 후보와 사람도 아니라는 후보가 붙었다. 결과는 사람 같잖은 후보가 압도적으로 당선되었다. 돈의 힘이었다.

    이러고서도 향교를 선비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성균관이나 향교를 수선지지(首善之地)라고 한다. ‘제일 착한 곳’이란 뜻이다. 제일 착한 곳에서 착한 물이 흘러 퍼져 사방을 교화하라는 역할을 준 것인데, 이렇게 썩었는데, 일반 사람들에게 유교와 선비정신을 전파할 수 있겠는가?

    * 無: 없을 무. * 用: 쓸 용.

    * 腐: 썩을 부. * 儒: 선비 유.

    허권수 동방한학연구원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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