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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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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ON- 책] 햇볕 11페이지

동글동글 아이의 마음, 햇볕에 펼쳐놓다

  • 기사입력 : 2023-11-24 08: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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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주 출신 김륭 시인이 펴낸 신간 동시집
    시인 특유의 동글동글함, 삽화와 어우러져
    62세 나이에도 새롭고 독특한 시어 선봬
    저마다의 동심 균형 있게 가꾸는 모습 강조

    자음 ‘ㅇ’에는 누구와도 어울릴 명랑한 사이좋음이 있다. ‘ㄱ’과 ‘ㄴ’처럼 각진 자음과는 다르게 말이다. 못 믿겠다면 말 끝에 ‘ㅇ’을 붙여 봐랑. 벌써 이 글을 읽는 독자와 친해진 것 같은 느낌이당.

    ‘동화’나 ‘동시’에 ‘ㅇ’이 포함돼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둥근 원형은 변형되지 않은 것을 상징하고 동화나 동시는 그런 ‘아이’들이 독자가 되기 때문이다.

    신간 동시집 ‘햇볕 11페이지’를 펴낸 진주 출신의 김륭 시인의 필명에는 친근한 이미지가 있다. 그런 느낌은 마지막 받침인 ‘ㅇ’에서 온다. 신기하게도 그가 그동안 펴낸 책의 제목에 ‘ㅇ’이 빠진 책은 없다.


    김륭 시인 특유의 동글동글함은 책의 일러스트를 작업한 송미경 동화작가도 느꼈다고 한다. 송 작가는 해설에서 “김륭 시인은 아이들이 자신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동그라미를 그려준다”며 “동그라미는 어느 한 곳에 치우치지 않은 마음의 가장 중심에서 시작돼 빛이 덜 드는 구석 없이 어디로든 굴러간다”고 소개했다.

    ‘화가 잔뜩 나 뚜껑이 열리기 직전인 내 머릿속을/휘저어 지금 당장 필요한 단어 하나를/찾아 꺼내 보기로 했다//고요:잠잠하고 조용한 상태//눈뭉치를 만들어 던지며 신나게 놀던 아이들이/모두 떠나고 혼자 남은 눈사람의 마음은/어떻게 생겼을까?’ -‘눈사람과 고요’ 中

    한 개인의 언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낡고 고루해져 가기 마련이다. 시인의 나이는 어느덧 62세. 시인의 언어도 고루해지기 시작할 시기지만 여전히 ‘새롭고, 낯설고, 어렵고, 뜨겁고, 독특하다.(첫 동시집 문학동네 서평)’

    이러한 느낌은 시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그는 동시집 안에서 “댕댕이를 만들고 있는 중이에요”라 이야기하는 아이가 되고, “나는 매일 금요일처럼 살고 싶어요”라 외치는 키 작은 소녀가 되며, 우산은 비를 안아 줄 수 없기에 우산 속에 가만히 쪼그리고 앉아 빗소리를 들으며 자신과 대화하기 시작한 소년이 된다.

    어린이들은 자신이 가진 동그라미를 다듬고 붙여서 저마다의 모양을 만들며 성장할 것이다. 김륭 시인은 오늘날 어린이들이 동그라미를 가꾸어 나가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그러면서 강조한 건 ‘균형’이다.

    ‘길에서 태어난 길고양이 씨는 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집에서 태어난 집고양이 씨는 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길고양이 씨와 집고양이 씨는 공원 벤치에 앉아/햇볕을 쬐기 시작했다. 둘은 저마다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집과/마음 편히 다닐 수 있는 길이 급하다고 생각했지만/이내 가르릉 가르릉 졸기 시작했다./산책 나온 개가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꿈속으로 이사하고 있었다.//이건 학원 가기 싫은 내가/샛길로 빠져 슬그머니 펼쳐 보는/햇볕 11페이지./’-‘햇볕 11페이지’ 전문.

    저자 김륭, 그림 송미경, 출판 창비, 148쪽, 가격 1만2000원

    김용락 기자 rock@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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