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간이역] 상원사 동종- 김창균
- 기사입력 : 2023-11-23 08: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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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불의 노래, 나는
가까이 더 가까이 그대에게로 갑니다
발톱을 감추고 비상할 날을 기다리던 한 여인은
벌써 소리가 되어 종 속에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껴안고 온 발자국이
부질없어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가 당신의 옷자락을 건드리면
그대는 깊고 큰 소리를 냅니다
불 속으로 뛰어들며
제 몸을 버리고 새로운 몸을 얻은 그대는
몸피를 벗고
하얗게 종아리를 걷습니다
하여 정신없이
그대의 소리를 안고 가노라면
종루 바깥에선 하루 종일
배꽃이 져 내리고
바람은 그
꽃 지는 소리에 머리를 부딪치며
마침내
소리 하나 얻어 갑니다
☞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는 헤밍웨이의 소설 제목이기도 하지만 영국 시인이자 성직자였던 존 던의 시 제목이었다. 종(鐘)은 사찰에서, 혹은 성당에서 혹 교회당에서 그 어디에서 울리던 가슴이 먹먹해진다.
범종(梵鐘)은 법고와 운판과 목어와 더불어 사찰의 사물 중의 하나이나 이 모두를 아우르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모든 죽은 영혼을 위하여 울리는 종. 그래서 종의 제작 과정을 담은 설화 중에는 육신공양 설화가 많다.
상원사 동종도 마찬가지이다. “발톱을 감추고 비상할 날을 기다리던 한 여인은/ 벌써 소리가 되어 종 속에 들었습니다” “제 몸을 버리고 새로운 몸을 얻은 그대는” “지금까지 내가 껴안고 온 발자국이/ 부질없어/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가 당신의 옷자락을 건드리면/ 그대는 깊고 큰 소리를 냅니다” 슬픈 사랑이다. -성선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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