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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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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추 장관과 인사만사(人事萬事)- 정기홍(논설위원)

  • 기사입력 : 2020-10-25 20: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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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사만사’는 좋은 인재를 잘 뽑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다. 이는 모든 일을 잘 풀리게 하고, 순리대로 돌아가게 하기 위함이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취임한 후 ‘인사만사’를 염두에 두고 인사를 단행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법조인들이 적지 않다. 자신은 공평한 인사를 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세평은 그렇치가 않다. 법무부 스스로 강조하는 ‘공정’과는 거리가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지휘권 박탈과 상당수 검사들에 대한 좌천인사는 ‘파비우스의 승리’로 보여진다. 피해를 입었음에도 끝끝내 이겼다는 것이다. 영국의 유력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검찰 인사는 조선시대 관리 유배 보내는 것과 유사하다. 한국이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는 검찰 간부를 유배지로 보내 권력을 지키고자 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일단 윤 총장과의 전쟁에서 거둔 승리는 상처뿐인 파비우스의 승리다.

    추 장관의 검찰인사 가운데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예를 들여다보자. 믿기 어렵지만 엄연히 지금 대한민국 법무부에서 벌어진 일이다. 추 장관의 검찰인사에 대한 절정판을 보여주고 있다. 한 검사장의 인사를 꺼내는 것은 앞으로 중앙부처는 물론이고 공공기관, 기업 등 모든 조직에서 이 같은 인사는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한동훈 검사장이 누구인가. 2017년 문재인 정부에서 차장검사로 승진하며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하에서 차장검사 보직 중 가장 요직이자 특수수사를 총괄하는 제3차장을 맡아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비리를 수사했다. 2019년 7월 윤 중앙지검장이 검찰총장에 직행한 후 단행한 인사에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영전하며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윤 총장이 매우 신임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03년 SK 최태원 회장 구속, 2005년 현대차 정몽구 회장 구속, 2017년 삼성 이재용 회장 구속 때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올 초 추 장관 취임 이후 윤 총장과의 갈등으로 인해 그는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좌천됐고, 다시 법무연수원 경기도 용인분원 연구위원으로 발령나면서 두 번째 좌천됐다. 부산고검으로 보낸 것은 사표를 내고 검찰에서 나가라는 게 검찰내부 해석이다. 이어 이달 14일에는 충북 진천군의 법무연수원 본원으로 근무지를 이동시켰다. 검사장을 9개월여 만에 세 차례에 걸쳐 인사단행 및 근무지를 바꿔버린 것이다. 본원으로 갔지만 진천군은 서울에서 출퇴근하기가 어려운 거리다. 참 옹졸하다는 생각이 든다. 문 대통령이 강조하는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것과 무엇이 일치하는가. 부장검사 출신 모 변호사는 “추 장관이 전횡을 휘두르고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비난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법무부는 감찰관실을 통해 용인분원에서 한 검사장의 근무태도는 어떠했는지 등을 캐물은 것으로 전해졌다. 많은 법조인들은 ‘매우 악랄한’ 인사보복이자 감찰보복이라고 단정했다. 법무부장관이 검사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가. 검찰 내 ‘근무평정’이라는 객관적 인사시스템을 단번에 뭉갠 것이다. 추 장관은 한번도 가지 않은 길을 걷고 있다. 스쿨존에서 보란듯이 과속하는 운전자를 보는 느낌이다. 이를 두고 법조계 한 인사는 추 장관 취임 이후 인사만사(人事萬事)는커녕 인사망사(人事亡事), 인사참사(人事慘事)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고 있다. 인사만사를 실천하지 못하더라도 보복성 인사는 안 된다. 조직의 기본을 와해시킬 우려가 농후하기 때문이다. 추 장관은 권력에 흠뻑 취해 있는 건 아닌지. 자신에게 비판적이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검사장을 짧은 기간에 세 번씩이나 좌천시키는 데 쾌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읍참마속(泣斬馬謖), 공정한 업무 처리와 법 적용을 위해 사사로운 정을 포기한다는 의미다. 자신의 오른팔 같은 사람의 목을 벤 제갈량이 떠오른다.

    정기홍(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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