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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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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바람을 입다- 원순련(미래융합평생교육연구소 대표·교육학박사)

  • 기사입력 : 2020-08-31 20: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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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처럼 장마가 오래가는 해는 없었던 것 같다. 눈만 뜨면 비가 내려 어느 하루 사심 없는 햇살을 구경하기 힘들 만큼 장마가 심하다. 그래서 해마다 여름이 오면 서너 번은 입는 모시 한복을 이번 여름은 한 번도 꺼내보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부터 햇살이 환하게 웃고 나온다.

    얼른 옷장을 열어 모시 치마저고리를 꺼내어 손질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어깨 너머로 배운 모시 옷 손질은 꽤나 까다롭고 시간이 걸리지만, 그래도 그 기억을 살려 나도 모시옷 손질을 제법 잘하는 편이다. 모시옷을 손질하는 날은 내 마음을 수행하는 날이다.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날을 택하여 구겨진 내 마음을 펴듯이 나를 가꾸는 작업이 바로 모시옷 손질하는 날이다.

    쌀풀을 쑤어 잘 으깨고 문질러 걸쭉하게 풀물을 만들어 모시옷을 담그면 모시올 사이로 풀물이 스며든다. 풀물이 쏙 배이도록 주물려 꼭 짠 다음 옥상 위 바지랑대를 중심으로 반듯하게 펼쳐 널었다. 수분이 적당하게 날아간 다음, 접어서 밟고 말리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는 동안 모시 한 올 한 올은 날이 서고 모양을 내며 귀품 있는 자태를 드러내게 된다.

    친정어머님은 이렇게 귀품 있게 자세를 갖춘 모시옷을 인두와 숯불 다리미로 구석구석 구김살을 펴 가며 잘 다려 정말 근사한 예술품 한 벌을 내 놓으셨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그렇게 정성을 들인 모시옷을 입고 장에 가시는 모습이 꼭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이런 기억이 너무나 소중하여 나도 여름이면 어머니 흉내를 내 본다. 쪽물을 들인 청색치마에 하얀 모시 저고리를 입고 나가면 나도 몰래 내가 근사한 조선시대의 아낙이 된다. 발끝을 덮는 치마와 손목까지 내려오는 저고리지만 모시옷은 참 신기하게도 절대 살갗에 땀을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모시올 사이사이로 어디선가 솔솔 향긋한 바람이 만들어진다. 모시옷을 입고 걸으면 대나무 숲을 걷는 것처럼 사각사각 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나 혼자 느끼는 착각일까? 한 여름 모시옷을 입는 것은 옷을 입은 것이 아니라 바람을 입은 것이다.

    원순련(미래융합평생교육연구소 대표 교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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