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시조로 읽는 한국의 석탑] (22) 산청 내원사 삼층석탑(보물 제1113호)
아지랑이 속에 흔들거리며 저만치 석탑 걸어온다
- 기사입력 : 2019-11-25 20:5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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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은 뒷짐 지고 걷고
절은 짐짓 못 본 척한다
때 이른 산천재 남명매 진다고
그래도 비로자나불 아는 듯 모르는 듯
부처는 바다를 보고
보살은 안개를 본다
물은 갇혀 있어도 연꽃을 피워내고
흘러서 닿을 수 없는 독경소리 외롭다
산천재에 가니 조식 선생 안 계시고 남명매만 피어 있더라. 아니다. 눈으로만 보면 꽃만 보일 것이고, 심안(心眼)으로 보면 글 읽는 선생도 뵐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난 결국 꽃만 보고 나왔다. 그리고 곧장 내원사 간다. 반갑다. 저만치 석탑이 걸어온다. 낮술 한잔 했는지, 봄볕에 그을린 탓인지 탑은 약간 불콰해 보인다.
아지랑이 속에 흔들거리며 걸어오는 탑의 몸짓을 절은 짐짓 못 본 체한다. 비를 머금었는지 축축한 안개가 내려왔다.
“바다를 보았느냐?”
“아니오, 안개를 보았을 뿐이오.”
안경을 닦아 보았지만 시야는 흐려 있었다. 그래, 맑은 물이 아니어도 연꽃은 핀다. 그렇게 날 위무하고 내원사를 나왔다.
사진= 손묵광, 시조= 이달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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