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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유순(경남여성인권상담소장)

  • 기사입력 : 2019-11-13 20:4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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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두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다.

    얼마 전, 고양이 한 마리가 제대로 볼일(?)을 보지 못하고 평소와 달리 날카로워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다음 날 동물병원에 갔더니 아픈 지 제법 되었다며 늦게 왔다고 한다. 아프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나의 미욱함 때문에 생명을 위태롭게 했다는 죄책감이 밀려와 며칠 동안 옆에서 병간호하며 가슴 졸였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수많은 길고양이들이 있다. 집에서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터라 다른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관심있게 고양이를 바라보지만, 밖에 있는 고양이에 대해서는 내가 이름을 부르는 고양이보다 관심이 덜한 것은 분명하다.

    최근에 서성동집결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어 집결지 폐쇄 중에 있는 충남아산 장미마을을 방문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님들이 많은 사람들과 접촉이 있어 일반 사람들의 생각을 연결하는 통로라 생각되어 장미마을 폐쇄와 관련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했다. 기사님의 답변은 예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아산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와 있는데 집결지가 없어지면 그 사람들 욕구를 풀 데가 없다. 그러면 문제가 생기지 않겠느냐”라고 한다. ‘성매매여성이 없으면 성범죄가 늘어난다’라는 의미다. 다시 물었다. “그럼 거기에 있는 여성들은 어떤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세요?” “집에서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거나 가정형편이 나쁜 아이들이 거기로 왔겠지요. 가정에서 애들을 잘 키워야 하는데…”라고 한다.

    성매매집결지에서 일하는 여성들에 대해 그녀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현재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알거나 관심있는 이가 있을까. 정말 사회로부터 보살핌이 필요한 우리의 아이들, 이웃이었는데, 누군가의 욕망을 채워주는 대상이 되고, 도구화되는 게 정당한 것처럼 이야기되는 것이 옳은 것일까. 길거리에서 마주친 고양이는 길고양이일 뿐이지만, 우리 안으로 들어오면 의미가 재해석되는 것처럼 욕망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당연시하는 그녀들도 이제는 우리 안으로 들여 사회에서 온전히 품어야 하는 거 아닐까. ‘그래도 되는’ 여성은 아무도 없다.

    김유순(경남여성인권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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