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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2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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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읽었다는 착각- 홍미선(김해시 장유도서관장)

  • 기사입력 : 2024-02-07 19:3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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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처럼 독서생태계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자주 듣는 질문. 책 많이 읽으시겠네요? 예전에는 이런 상황에서 죄책감을 많이 느꼈다. 누구보다 많이 읽어야 할 직군이지만 책을 ‘읽기’ 보다 많이 ‘본다’에 가깝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는 다독자가 아니다. 차이가 있다면 과거의 죄책감이 이유 있는 소신으로 바뀌었을 뿐.

    몇 년 전 ‘매주 한 편, 이기호 작가 읽기’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야심한 저녁, 한 편의 단편소설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이었다. 텍스트는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휴일 하루를 투자한다면 전체를 읽을 수 있는 분량이지만 2개월에 걸쳐 나눠 읽은 셈이다. 혼자 전편(全篇)을 읽고 그 밀도감과 곳곳에 숨은 위트에 만족하며 책을 덮었다. 그런데 뭔가 허기가 느껴졌다. 도반들과 함께 읽으며 토론 리더의 일깨움이 있기 전까지 몰랐다. 내가 무엇을 간과했는지.

    해당 작품집에는 ‘수치’ ‘염치’와 같은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낯선 등장인물을 이해하려 애쓰며 그들에게 닥친 불행에 대해서 공감하며 다시 읽기 시작했다. 재독 삼독으로 이어지면서 평면적으로 보였던 소설 속 인물들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에 나오는 이 문장은 요즘도 종종 나를 반추하게 만든다. ‘나는 왜 자꾸 애꿎은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가?’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라지만 그래도 궁금했다. 저자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곧 성사된 북토크에서 그는 말했다. 집필 기간은 민주적 지점이 후퇴한 시기였고 이때 느꼈던 모욕감이 작품 전반에 ‘부끄러움’이라는 주제로 나온 것 같다고. 북토크를 계기로 사건을 바라보는 작가의 윤리적 자세와 부끄러움의 주체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다.

    광고인 박웅현의 강연 내용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다독은 중요하지 않다. 많이 읽어도 불행한 사람들도 많으니, 다독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시길 바란다. 다만 깊이 보는 건 능력이자 지혜다.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훈련하고 관점의 변화를 가져온다면 삶이 좀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홍미선(김해시 장유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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