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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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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마산의 독립운동가 역사를 바로 세우자- 진종삼(남하·노산 기념사업회이사장)

  • 기사입력 : 2024-01-21 19: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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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레가 앞으로 굴러가려면 두 바퀴의 크기가 같아야 한다. 옛 마산의 지역사를 보면 좌우 균형이 무너진 채 제자리에서 맴돌다 주저앉아 버린 형국이다. 남하 이승규 선생과 노산 이은상 선생의 대를 이은 독립운동은 지역 문인들과 향토사 연구가들에 의해 그 실체가 드러났으나 이들 독립유공자 가문의 역사와 유적은 흔적도 찾을 수 없고 이를 바로잡으려는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왜곡된 독립운동가의 지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몇 가지 제안을 한다.

    첫째, 남하 이승규 선생의 동상과 노산 이은상 선생의 시비(詩碑)부터 찾아야겠다. 마산 3·1운동의 중심지였던 옛 창신학교 교정에 서 있던 동상이 없어져 버렸다.

    남하 선생은 개화기 마산의 발전을 위해 학교와 교회를 세우는 일에 진력하고, 마산 3·1 만세 운동의 중심인물로 전 재산을 마산시에 기부했다. 이 공적으로 학교 동창회는 동상을 세우고, 지역사회단체는 사회장을 치렀으며,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무학산 자락(회원동 산 62의 3)에 있던 남하 선생을 기리는 노산 선생의 ‘아버님을 여의고’ 시비도 찾아야 하겠다. 지난 2009년 남하 선생의 묘소를 진동 공원묘지로 이장하는 과정에서 묘 앞에 있던 시비가 없어졌다. 오죽 섭섭했으면 유족이 묘소를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장했을까. 동상을 찾아 지사의 공훈록을 새기면 대일항쟁기 민족학교인 창신학교를 널리 알리고, 마산 3·1 운동사를 바르게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이며, 노산 선생 아버지의 시비를 찾아 효를 가르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둘째, 북마산 가구거리 건너편 옛 태양극장 자리에 있던 선생의 생가터와 노비산 일대의 과수원 등 많은 재산을 마산시에 기부하였는데, 그 흔한 표지석 하나 없다. 1903년 노산 선생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은상이 샘을 도로 공사로 이전할 때, 당초 계획된 팔각정은 세우지 않고, 샘만 초라하게 옮겨 놓는 등 독립유공자 남하 선생 가문의 흔적을 철저히 지워버렸다. 이 자리에 3부자(三父子) 독립운동가의 생가터 표지석이라도 세워줄 것을 제안한다.

    셋째, 옛 마산시는 2000년도에 김대중 정부로부터 노산 문학관 건립비 10억원을 반려하고, 김호일 의원의 노력으로 6억원을 배정받았으나, 불법으로 마산문학관을 건립했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대안이라도 모색해야 한다. 현대는 문화의 시대이다. 작은 사안이라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려는 시대에 우리 창원(마산)시는 대한민국의 대문호 노산 이은상 선생과 함께 개화기 마산의 독립운동가 남하 이승규 선생, 수필 ‘무상’의 주인공 이정상(이은상의 동생) 선생의 얼을 살려 3부자(三父子) 독립운동기념관을 건립, 국가 현충 시설로 지정하여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길 바란다.

    진종삼(남하·노산 기념사업회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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