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간이역] 등 뒤를 돌아보자- 박노해
- 기사입력 : 2023-12-14 08: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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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는 등 뒤를 돌아보자
앞만 바라보고 달려온 동안
등 뒤의 슬픔에 등 뒤의 사랑에
무심했던 시간들을 돌아보자
눈 내리는 12월의 겨울나무는
벌거벗은 힘으로 깊은 숨을 쉬며
숨 가쁘게 달려온 해와 달의 시간을
고개 숙여 묵묵히 돌아보고 있다
우리가 여기까지 달려온 것은
두고 온 것들을 돌아보기 위한 것
내 그립고 눈물 나고 사랑스러운 것들은
다 등 뒤에 서성이고 있으니
그것들이 내 몸을 밀어주며
등불 같은 첫 마음으로
다시 나아가게 하는 힘이니
12월에는 등 뒤를 돌아보자
☞너나없이 숨 고르기가 필요한 12월은 ‘뒤를 돌아보다’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달이다. 슬퍼할 겨를도, 사랑할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잠시 걸음을 멈추어 보자. 여기까지 오는 동안 등 뒤의 무심했던 시간을 들여다보자. 그리고 겨울 숲으로 가 보자.
눈 내리는 겨울나무에게 12월은, ‘성장은 멈추었지만 성숙해지는 계절’이다. 낙엽을 모조리 떨구어 발밑의 언 땅을 덮어주며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는 나무들. 그 겨울 숲에 들면 어느새 나도 한 그루 나무가 된다. 그저 과거를 회상하는 일이 아니다. 내 몸을 밀어, 다시 나아가게 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립고 눈물 나고 사랑스러운 것들은 다 등 뒤에 서성이고’ 있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다. 그러니 무한반복으로 달려 온 해와 달의 노고를 절대 잊지 말자.
2024년, 저만치 등불 같은 1월이 오고 있다. -천융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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