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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빈대- 강지현(편집부장)

  • 기사입력 : 2023-10-22 19: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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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납작한 타원형 몸통에 다리 6개, 길이는 6~9㎜. 포유동물의 피를 빨아 먹고 산다. 몸집의 6배까지 흡혈할 수 있다. 빛깔은 대개 갈색, 생존 기간은 1~2년이다. 먹지 않고도 4개월 이상 버틴다. 빛을 싫어해 낮에는 가구나 벽 틈에 숨어 지내다 밤이 되면 기어 나와 피를 빤다. 물리면 피부가 빨갛게 붓고 심하게 가렵다. 최근 난데없이 주목받고 있는 곤충, 빈대 얘기다.

    ▼과거 우리나라엔 빈대가 흔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였다. ‘후진국 해충’으로 여겨졌던 빈대는 1970년대 DDT 살충제 방역으로 거의 자취를 감췄다. 그런데 최근 인천의 한 찜질방과 대구 계명대 기숙사에서 빈대가 발견됐다.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등 유럽의 주요 도시들도 빈대로 몸살을 앓고 있다. 빈대의 출몰은 전 세계적인 문제가 됐다.

    ▼현재 지구상에는 총 75종의 빈대가 산다. 이 중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종은 침대벌레(bedbug)로 불리는 시멕스 렉툴라리우스(Cimex lectularius)다. 빈대에게 물린 첫 동물은 공룡일 가능성이 크다. 세계 10개국 연구기관이 빈대 DNA를 분석한 결과 1억1500만년 전 중생대 백악기에 빈대의 흔적이 발견됐다. 인간과 빈대의 끈질긴 악연은 약 25만년 전 일부 빈대가 동굴 속 박쥐에서 초기 인류로 숙주를 갈아타면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관광, 무역, 이민 등의 세계화는 빈대의 확산을 불렀다. 살충제 내성이 커지고 천적인 바퀴벌레가 줄어든 영향도 있다. 사실 빈대는 물리적 위험보다 심리적 공포가 크다. 성가시고 혐오스럽지만 질병을 옮기지는 않는다. 우리는 지나치게 염치가 없는 사람을 나무랄 때 이렇게 말한다. “빈대도 낯짝이 있지.” 작고 하찮은 미물도 체면을 차릴 줄 알고 부끄러움을 안다는 의미다. 빈대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진 요즘, 빈대 낯짝만큼의 염치도 없는 정치인들이 새겨들어야 할 속담 아닐까. 사람이 염치를 모르면 빈대보다 나을 게 없다.

    강지현(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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