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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주이불비(周而不比)- 이상권(서울본부장)

  • 기사입력 : 2023-10-17 20: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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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42년 음력 3월, 성균관 반수교(泮水橋)에 탕평비(蕩平碑)가 세워졌다. ‘편당을 짓지 않고 두루 화합함은 군자의 공평한 마음이요, 편당을 짓고 두루 화합하지 아니함은 소인의 사심이다(周而不比 君子之公心, 比而不周 小人之私意)’. 세자 시절부터 당쟁의 참상을 겪은 조선 21대 왕 영조는 성균관 유생들에게 불편부당(不偏不黨)의 도를 닦으라는 경계의 글을 내렸다. ‘주이불비(周而不比) 비이불주(比而不周)’는 공자 위정(爲政)편에 나온다. 주(周)는 화합이고, 비(比)는 사적 이해관계에 따른 결탁을 의미한다.

    ▼탕평은 중국 고대 경전인 서경(書經)에 나오는 말이다. 왕은 정파를 초월해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공평하게 인재를 등용해 정치를 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영조 재위 기간 52년 동안 가장 중심에 둔 국정철학은 탕평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탕평이란 용어가 총 477회 검색되는데, 이 중 영조 대에만 343회 등장한다.

    ▼편을 가르는 문화는 어느 시대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다만 사적 감정이나 호불호에 따른 갈라치기에서 문제가 생긴다. 정치판의 편 가르기는 권력 의지의 발로다. 한데 한국 정치의 헤게모니 쟁탈전은 갈수록 막장으로 치닫는다. 자기 생각만 절대 선이라는 독단의 신념에 나라는 두 동강 났다. 미국 정치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지적한 비토크라시(vetocracy)의 용광로가 됐다. 상대 정파의 정책과 주장을 모조리 거부하는 극단의 파당 정치다.

    ▼한국형 나사(NASA·미 항공우주국)인 ‘사천 우주항공청’ 올해 설립이 물 건너갔다. 우주항공청법 논의가 국회에서 수개월째 야당에 발목이 잡혔는데도 경남 민주당 의원의 중재 기미는 없다. 반대 진영의 국정과제는 협조하지 않겠다는 암묵적 메시지로 읽힌다. 정파를 떠난 대승적 화합은 말조차 못 꺼내는 현실이다. 300년 전 ‘주이불비’를 설파한 탕평비를 다시 세워야 할 판이다.

    이상권(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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