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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결정적 8월, 마산·부산 방어전투- 최형두 국회의원(창원시 마산합포구)

  • 기사입력 : 2023-08-13 19:3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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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시간과 싸우고 있다. 더 이상의 후퇴, 철수, 더 이상 물러날 방어선은 없다. 부산까지 무너지면 사상 최악의 학살이 벌어질 것이다. 우리는 끝까지 싸워야 한다. 우리는 함께 싸울 것이다. 만약 우리 중 일부가 반드시 죽어야 된다면 우리는 모두 함께 싸우다 죽을 것이다.”

    유엔 참전 기념 70주년, 한미동맹 70주년 되는 올해, 6·25전쟁사에서 잊혀졌던 결정적 전투는 바로 경남 낙동강 남서부 창녕·함안·마산에서 벌어졌다. 그때 유엔군으로 참전한 미군 지휘관 월턴 워커 중장은 “죽음으로 지켜라(Stand or Die)”는 엄명을 내렸다. 6월 25일 기습남침 이후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던 북한군을 국군, 경찰, 학도병, 시민들이 유엔군과 함께 대구 영천에서 막아내고 있었지만 가장 약한 고리는 낙동강 서남단의 마산 쪽이었다.

    7월 31일 진주를 점령한 북한군 정예 6사단 1만명이 마산 방향으로 진격해 들어왔다.

    예기치 못한 방향에서 나타난 6사단의 진격에 놀란 워커 중장은 경북 상주에 있던 미군 보병 25사단을 급히 마산으로 이동시켰다. 그리하여 북한 6사단과 미 25사단 사이의 치열한 싸움이 50여일간 펼쳐졌다. 만약 북한군 6사단이 하루라도 먼저 마산을 치고 들어왔으면 사실상 부산 함락으로 이어질 뻔했다. 워커 장군은 미군 25사단의 신속 이동을 두고 ‘역사를 바꾼 기동전(history making maneuver)’으로 부르며 임시수도이자 유엔군 교두보였던 부산을 살렸다고 했다. 그로부터 70여년이 지난 지금, 함안군, 마산합포의 진북면, 진전면, 진동면에서 ‘갓데미산’으로 불리는 고지전의 사연을 아는 세대 외에는 우리 도시의 사람들도 이제는 이 역사를 잊은 지 오래다.

    지금 다시 결정적 8월 마산·부산 방어전투를 얘기하는 까닭은 ‘역사를 잊지 말자’는 당위를 넘어 향후 경남 일원에 유엔군 참전국가와 인연을 다시 복원하자는 이야기다. 미국, 캐나다, 호주, 유럽 국가들 모두 우리나라 투자유치 무역과 통상, 투자, 국가안보를 위해 더욱 중요해졌다. 그 나라 사람들이 피로써 지킨 지역을 우리가 기억하고 기념하는 일은 사실은 우리의 미래를 위한 것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엔기념공원이 있는 부산은 지난 7월 27일 유엔참전국가의 대표단, 참전용사들을 초청해 유엔군 참전의 날 70주년 기념식을 성대하게 열었다. 이날 저녁에는 광안대교에서 수만 명의 젊은이들이 기념 달리기 대회를 열었다.

    8월은 경남 차례다. 임시수도 부산을 지켜냈던 마산·창녕·함안 시민, 유엔군, 국군, 대한민국해병대, 전투경찰이 자랑스런 역사를 이어 나가야 한다. 마창대교에서 광복절 전야, 유엔군 최초의 반격이었던 해병대 진동리전첩을 기념하는 달밤 달리기(나이트런)도 하고, 마산부산방어전투를 가르치며 경남에 더 많은 유엔국 참전용사 가족, 그 후예들이 찾아오도록 해야 한다.

    1979년에는 부산이 먼저 나서고 마산이 함께한 까닭에 부마민주항쟁이라고 부른다면, 6·25 때 그 결정적 시기에는 마산이 부산을 지켰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마산부산방어전투’라고 부르면 어떨까.

    최형두 국회의원(창원시 마산합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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