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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2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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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시인으로 산다는 것- 오인태(남정초등학교 교장·교육학 박사)

  • 기사입력 : 2023-07-16 19:3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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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아오면서 무엇이 되고자 목맨 일은 없다. 한 번 있긴 하다. 다분히 개인사인 데다 어디선가 밝힌 적 있어 여기서까지 되풀이하지 않으련다.

    대학 다닐 때 학보사 편집국장을 맡고부터 국장, 교사, 부장, 장학사, 연구사, 원장, 교장, 회장 따위, 나를 따라다닌 직위나 호칭은 살다 보니 그리되고, 어쩌다 그리 불렸을 뿐, 어느 것도 안달복달해서 이룬 자리는 아니었다.

    해야 할 일이면 하고, 가라는 곳, 오라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재주껏, 힘껏 일했다. 누군가 이미 잘하고 있는 일이나 자리를 넘본 적도 없다. 대개 남들이 꺼리는 곳이나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는 소임을 자의든 타의든 맡아, 말하자면 해결사나 구원투수의 역할을 했지만 스스로 성취감과 보람으로 만족했지 그걸로 점수나 지위 따위 대가를 바라지도 않았고, 특별히 보상받은 기억도 없다.

    직위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나를 부르는 호칭 가운데 하나인 ‘시인’은 내게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와 관련된 수식어다.

    무릇 시인은 세계의 문제를 자아의 문제로 받아들여 동고동락하고 공감하고 공명하는 존재다. 단 한 편의 인생 시를 쓰기 위해서 어제 쓴 시를 찢고 오늘의 시를 쓰는, 또 내일은 오늘 쓴 시를 찢고 내일의 시를 써야 하는, 끊임없는 자기부정의 천형을 스스로 짊어진 자가 시인이다. 뛰어난 시인이라고는 못하지만, 그래도 여태껏 살아오면서 나를 둘러싼 세계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함께 부대끼면서 시인으로서 자세를 흩트리거나 시적 탐구를 게을리하진 않았다.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이 길을 가면 시를 쓸 수 있을까?’가 중요한 선택 기준이었다. 교대를 진학할 때도, 포기각서 대신 차라리 해직을 결심했을 때도, 고민 끝에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굳혔을 때도, 교육전문직으로 전직해서라도 교직에 남기로 작정했을 때도 그랬다.

    다행히 지금까지 몇 번의 선택에도 사는 일과 쓰는 일이 모순되지 않았으니, 앞으로도 어떤 선택이든 이 기준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굳이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내 선택은 분명하다.

    오인태(남정초등학교 교장·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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