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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1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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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결혼 이야기- 신현목(변호사)

  • 기사입력 : 2023-04-09 19:3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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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 매일 눈뜰 때마다 당신이 죽기를 바라고, 당신이 병에 걸려, 차에 치여 죽었으면 좋겠어!”

    영화 ‘결혼 이야기’에서 남편 찰리가 화를 이기지 못하고 아내 니콜에게 쏟아낸 말이다. 이혼소송을 대화로 풀자던 자리는 어느새 서로를 비아냥거리고 악다구니를 퍼붓는 자리로 바꿔 끝내 폭발한다. 찰리도 곧장 후회하며 오열하고 니콜도 눈물을 흘리며 찰리를 위로하지만, 두 사람의 간극을 더 이상 메울 수는 없다.

    이혼소송 기록을 찬찬히 읽어본다. 때로는 현실이 영화보다 잔혹하다. 영화보다 결코 덜하지 않은 폭언, 욕설이 난무하고,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는 온갖 방법으로 수집된 증거들이 쏟아진다. 기록 속 두 사람의 결혼 이야기에 열렬히 사랑한 ‘따뜻한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민법 840조의 이혼 사유가 되는 ‘차가운 사실’만이 있을 뿐이다. 와인을 가볍게 마시던 니콜이 알코올 중독자가 되듯이, 대수롭지 않던 일상과 대화는 아픈 상처를 후벼파는 칼이 된다. 칼로 물이 베어지는 세상이다.

    모든 이혼이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는다. 회복할 수 없는 관계를 직시하고, 잘잘못을 일일이 되짚기보다 각자의 앞길을 위해 새로 써 내려간 결혼 이야기는 대체로 예후가 좋다. 이혼 합의서를 보며 꽤 오붓하게 상의하고 어떤 저녁을 같이 먹을지 고민하며 사무실을 나서던 의뢰인 부부가 생각난다. 그들이 승자 없는 승자를 가리기 위해 이혼 전쟁을 치르는 것보다 나은 건전한 관계를 이어가리라 자신한다. 이혼은 앞다투어 권장할 만한 것이 못 된다. 하지만 결혼이 서로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주는 경우 모두를 위한 신중한 선택에 이혼이 있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가족이 지켜야 할 것은 사랑과 행복이지, 혼인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남은 문제는 ‘어떻게’이다. 유책을 가리기 위해 과거를 향해 증오와 보복을 쏟으며 온 힘을 소진하기보다, 각자의 미래를 위한 이성과 배려를 남겨둘 필요가 있다. 이혼은 인생의 끝이 아니다. 영화처럼 결혼은 끝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그리고 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행복한 결말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신현목(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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