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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9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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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풍수지리] 음택과 양택의 현장풍수와 간산(看山)

  • 기사입력 : 2010-12-3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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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묏자리를 잡으려고 산을 관찰하고 살펴보는 것을 간산(看山)이라 한다. 충남 부여군 내산면 지티리의 마을회관 위쪽에 위치한 ‘김종필 조부모 묘소’는 풍수학인이라면 한번쯤 가서 교과서의 내용과 비교해 보면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곳의 특이한 것은 청룡과 백호가 거의 없고 객산이 막아주어서 혈이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김종필 전 총재는 할머니의 묘를 쓰고 난 후 출생했는데 월하산에서 시작된 용은 몇 차례의 기복(起伏·지세가 높아졌다 낮아졌다 함)을 거치고 좌우 요동을 하면서, 깊숙한 과협(過峽)을 지나 입수를 하여 혈에 도달하는데 가히 그 형상이 명당으로서의 기본을 완벽하게 갖추었다 하겠다.

    주산은 마치 종을 엎어 놓은 듯한 금형의 형체로 대단히 역동적이고 호쾌한 기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사격(砂格)을 글로 표현하면 유용무호역위길 유호무용미시흉, 지요외산연접응 분명유혈복상풍(有龍無虎亦爲吉 有虎無龍未是凶, 只要外山連接應 分明有穴福常豊·청룡이 있고 백호가 없어도 길함이요, 백호만 있고 청룡은 없어도 흉함이 아니니, 다만 외산이 응해 주면 분명 혈이 있고 복이 항상 풍성함이라)이라 한다.

    현장에서 풍수 감결은 어느 한 부분만을 보고 평가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전체를 보고 나서 세밀한 부분을 살펴본 연후에 최종 판단을 해야 실수가 없을 것이다. 대체로 양택풍수의 감결은 양택삼요(陽宅三要)가 가장 기본이 된다.

    충남 예산군 예산읍으로 향하다가 삼거리에서 온양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당진 쪽으로 조금 가면 ‘추사 선생 고택’이 나타난다. 이곳의 정확한 지명은 충남 예산군 예산읍 신암면 용궁리로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며 대표적 서예가였던 추사 김정희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안채·사랑채·문간채로 구성되었으며 추사 이후 후손이 살며 선조의 유지를 받들다가 1968년 타인에게 매매되었는데 1976년 예산군에서 매수하여 지방문화재 제43호로 지정해 오늘날에 이른다.

    어린 백송(白松) 몇 그루가 서 있는 솟을 대문을 지나면 사랑채가 나타나는데 사랑채의 마당 중심에서 패철로 방위를 측정해 보니 생기택과 천을부엌으로 매우 생기가 있는 집으로 측정이 되었다. 그런데 예전에는 아이를 낳는 방인 산실 중에서 훌륭한 인물이 배출되던 꽤 이름 있는 집안의 산실은 시집간 딸에게는 출가외인으로 기를 뺏어간다고 하여 산방으로 쓰지 못하도록 한 경우가 종종 있었으며 오직 그 집의 며느리에게만 출산이 허용되었으니 딸의 입장에서 보면 서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을 것이다.

    몇 년 전 필자가 추사 선생 고택을 방문했을 때 사랑채 댓돌 앞마당에 석년(石年)이라 새긴 돌기둥이 있었는데 선생은 그 돌기둥의 그림자를 이용하여 시간을 측정하는 ‘해시계’로 사용했으며 그것을 추사선생이 직접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고서 과연 선생은 서예의 대가일 뿐만 아니라 다방면에 소질이 뛰어났음을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의 마을이 끝나는 지점에서 100m 정도 올라가면 그 유명한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부친인 남연군묘가 있다. 2대에 걸쳐 황제가 나올 자리라 하여 백성들의 원성마저도 뒤로하면서 가야사를 불태우고 봉분을 모실 자리에 있던 석탑을 부순 뒤 경기도 연천에 있던 남연군의 묘를 이곳으로 이장한 것이다.

    이곳은 망주석, 장명등, 호석 등이 매우 화려한 위용을 과시하고 있으며 안산(案山·봉분의 앞산)은 마치 만조백관이 봉분을 향하여 다소곳이 절을 하는 모습을 갖추고 있어 매우 길한 형상이었는데 주산에서 뻗어 내려오는 용맥은 그다지 힘이 있는 형세가 아니며 당판은 갖추었으나 청룡(靑龍·남자를 상징함)은 온순하되 어찌 보면 힘이 없고 기가 빠진 형상을 하고 있는 반면 백호(白虎·여자, 특히 며느리를 상징함)는 그 형상이 당당하고 힘이 있으니 여자들의 주장이 드셀 것으로 보였으니 어찌 시아버지인 대원군과 한판 격돌이 없을 수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남향으로 탁 트인 안산만큼은 어디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으니 그래서 이 자리가 2대에 걸쳐 황제가 나온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산을 내려왔다.

    주재민(화산풍수지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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