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내 키는 제일 작았지만
구경터 어른들 어깨 너머로
환희 들여다보았었지.
아버지가 나를 높이 안아 주셨으니까.
밝고 넓은 길에선
항상 앞장세우고
어둡고 험한 데선
뒤따르게 하셨지.
무서운 것이 덤빌 땐
아버지는 나를 꼭
가슴속, 품속에 넣고 계셨지.
이젠 나도 자라서
기운 센 아이.
아버지를 위해선
앞에도 뒤에도 설 수 있건만
아버지는 멀리 산에만 계시네.
어쩌다 찾아오면
잔디풀, 도라지꽃
주름진 얼굴인 양, 웃는 눈인 양
‘너 왔구나?’ 하시는 듯
아! 아버지는 정다운 무덤으로
산에만 계시네…. <1981년 열매>
☞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고 무서울 것도 없을 것 같던 아버지라는 존재. 그 시절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보니 힘겨운 시대를 살아낸 한 남자로, 또 언제나 자식들에게는 영웅이고자 눈물과 땀을 감춰 오셨던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언젠가 보았던 야윈 아버지의 뒷모습. 괜히 속상해 허리 좀 펴고 다니시라고 잔소리만 늘어놓았던 어린 딸은 이 시에서처럼 ‘아버지를 위해선 앞에도 뒤에도 설 수 있’는데 이제 그럴 수 없다. ‘나무가 고요히 있으려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아니하고 자식이 부모를 모시려 해도 기다려주지 못한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韓詩外傳)’고 하는 옛말이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언제 불러도 든든하고 그리운 이름, 아버지. 5월 어버이날을 앞두고 아버지의 그 깊고 큰 사랑을 다시금 떠올려본다. 장진화 아동문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