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이 높다
개가 짖는다
담이 흔들린다
지진인가?
3층 높이의 나무가 이따금 바람을 보낸다
30년 전 푸릇푸릇 돋아나던 나뭇잎
푸르고 싱싱하게 성장한 나무
명예퇴직을 하는 동료를 보내듯 단풍잎 날려 보내고
창살을 사이에 두고 손 내밀어 주시는
접견실 수녀님의 기도처럼
그녀가 있는 안과
내가 있는 밖은
분명하게 그어진 선
개가 짖고 담이 흔들려도
벽은 벽이다
담쟁이처럼 씩씩하게 머리를 들고 갈까나
거실 등이 흔들리고
어지럽고 매스껍다
핸드폰을 보채는 재난문자
☞ 이 시 제목 속의 ‘캥거루’는 요즘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캥거루족’이 연상되지만, 실제 시 속에서는 관습적 종교적 이중규율의 백(벽)안에 갇힌(짊어진) 시적 화자를 환유하는 것으로 읽힌다. 이 백(벽)은 생존을 위협하는 천재지변인 지진에도, 유구한 강산이 세 번(‘30년’)이나 변하는 시간의 흐름에도 끄떡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녀가 있는 안과/내가 있는 밖은//분명하게 그어진 선’을‘담쟁이처럼 씩씩하게 머리를 들고 갈까나’ 토로는 너무나 비현실적인 넋두리가 돼버리고, 독자들은 현실(규율)에 집중하라고 ‘핸드폰을 보채는 재난문자’에 시달리는 ‘캥거루 백을 멘 남자’가 바로 나의 현재 모습이라는 자각을 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이 시는 캥거루 이미지를 백(벽)과 재난문자 이미지와 접목하여, 관습과 규율의 견고한 백(벽)에 갇힌 채 살아가는 시적 화자(소시민)의 핍진한 내면을 무심한 듯 평이한 문장으로 포장하여, 읽을수록 생의 숨겨진 맛들이 줄줄이 딸려 나오게 하는, 이 작자의 사유의 폭과 시적 센스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값진 시가 될 것이다. 조은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