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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 동차서오(東差西誤)- 동쪽에서 어긋나고 서쪽에서 틀린다. 여기저기서 잘못되다

  • 기사입력 : 2011-02-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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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는 책의 나라다. 우리 조상들은 학문을 좋아했기 때문에 많은 책을 저술해 남겼다. 수많은 전란을 겪었지만, 오늘날 조상들이 남긴 책은 그래도 많이 남아 있다. 문집 종류만도 대략 1만 종류 이상 남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옛날 책은, 대부분 한문으로 쓰여져 있기 때문에 오늘날의 사람들은 거의 읽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동안 뜻있는 학자나 한국고전번역원,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등 국가기관 및 전통문화연구회 등 사설 단체에서 많은 고전을 번역해 중요한 고전이 우리말 책으로 만들어져 많이 읽히고 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연려실기술, 대동야승 등 기본적인 역사서와 퇴계집, 남명집, 율곡집, 여유당전서, 완당집 등 유명한 분들의 저서가 대부분 번역돼 있다. 이 밖에도 천문, 지리, 의학, 여행록 등 수많은 고전들이 번역되어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옛날의 역사와 학문을 연구할 수 있게 됐다. 한국고전번역원 같은 경우는 번역한 책을 인터넷에 다 무료로 공개하기 때문에 꼭 책값을 안 들여도 얼마든지 그 내용을 다 볼 수 있다.

    이렇게 고전 번역본이 많이 나와 우리 전통학문이 다시 일어나는 좋은 분위기가 전개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심각한 것은 번역 가운데 엉터리 번역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실력이 안 되는 사람이 공명심이나 금전욕에서 번역을 맡아서 자기도 모르면서 번역하는 경우이고, 다른 한 경우는 실력은 상당한데, 돈 받고 번역하다 보니, 정성을 기울이지 않고 원고지 매수 채우기에 급급해 날림으로 번역하는 경우이다.

    산청에 사는 필자의 먼 일가 되는 집안은 몇 대의 문집을 낸 글하는 집안으로, 지금도 교수, 연구원들이 배출되고 있다. 그 후손들이 ‘조상의 문집을 번역해야 할 것인데’라고 걱정을 했더니, 그 집안 사위가 자기가 번역하겠다고 자청하고 나섰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해 고등학교에서 고전을 강의하다가 교장으로 정년퇴직했다. 잘할 것이라고 믿고 맡겼다. 번역을 해서 책을 만들어 출판을 했는데, 살펴보니, 맞는 부분보다 틀린 부분이 더 많았다. 후손 가운데는 대학교 영문학 교수도 있었지만, 틀린 번역인지 아닌지도 구분을 못했다.

    서부 경남의 어떤 향교의 전교(典校)를 지낸 사람이, 상당히 비중 있는 인물의 문집을, 그 후손의 부탁을 받아 번역해서 널리 반포했다. 그런데 이 번역은 오류가 더 심해 맞는 곳이 거의 없었다. 심지어 그 안에 나오는 주자(朱子)가 지은 ‘논어혹문(論語或問)’이라는 책을 책 이름인 줄도 모르고, “논어에 대해서 어떤 사람이 묻기를”이라고 번역해 놓았다. 번역은커녕 아예 책이라 할 수도 없었다.

    몇몇 대학의 교수를 지내고 상당히 이름 있는 원로교수인데, 서부 경남 어떤 집안에서 서울에 찾아가 번역을 의뢰했다. 그런데 이 교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석 하나 없이, 고증(考證)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도 두루뭉술 넘어가는 식으로 번역했다. 번역은 번역인데, 읽어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게 번역해 놓았다.

    맹자가, “책을 다 믿으면 책이 없는 것만 못하다[盡信書, 不如無書]”란 말을 했다. 책다운 책, 번역다운 번역을 분별해서 읽어야 하겠다. 잘못된 번역은 많은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

    * 東 : 동녘 동 * 差 : 어긋날 차 * 西 : 서녘 서 * 誤 : 잘못될 오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여론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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