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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9월 26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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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글로벌 시대와 고삐 풀린 세상

양태현 신부(천주교마산교구 사목국장)
"변화는 세상에 대한 불안감 지혜로움 안에서 해소해야"

  • 기사입력 : 2008-07-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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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나날이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 변화의 속도는 아무도 예견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와 더불어 진정한 삶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들도 함께 일어나는 것이 참 다행으로 여겨집니다.

    오늘날을 흔히 글로벌(Global) 시대라고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미지의 세계를 향한 배에 태워 보내지지 않습니다. 지구상 거의 모든 곳이 하루 안에 닿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고 감추어진 정보는 거의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글로벌화가 진정한 인간 삶의 새로운 의미를 식별해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깁니다.

    아마도, 글로벌화가 특징하는 바, 즉 세상이 어떻게 변해갈지를 모른다는 사실이 특이하다 할 수 있으며 우리의 역사가 어떻게 쓰여져 나갈지를 예단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현실을 ‘고삐 풀린 세상’이라고 부릅니다.

    역사는 우리가 어떻게 통제할 수 없는 것이며,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범세계적인 부(富)를 지향하고 있는지, 아니면 현 경제 체계가 무너지고 있는 것인지, 경제가 장기간 급등을 유지할지, 아니면 한때 크게 부흥할지 아무도 예견할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의 세계 경제 입지가 앞으로 수백년간 우세함을 유지할지, 아니면 서방 강대국들의 세계 중심지적 입지가 끝나고 있는 것인지, 글로벌 세상이라는 것이, 모든 이가 잊고 있는 아프리카나 남미의 오지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인지, 글로벌 세상인지 아니면 글로벌 상실(喪失)인지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고삐 풀린 세상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상황을 분석해 보면 갑갑해지는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역사의 미래를 추측할 수 없는 이유는 인간 삶의 질적 향상을 도모해 주었지만, 그 결과를 알 수 없는 혁신 과학 기술들의 영향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새로운 종류의 위험 부담을 우리 자신 스스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만들어지는 위험 부담’, 즉 우리 행동의 결과로 인해 일어난 위험부담에 노출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자면 지구 온난화 현상, 인구폭발, 공해, 불안정한 시장경제, 불명확한 미래를 가진 유전공학이 바로 그것입니다. 광우병으로 불안해 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다 그 산물이라 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범하는 일들의 결과가 어떻게 일어날지를 모릅니다. 그래서 고삐 풀린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며 이러한 현실은 아주 깊은 불안감을 자아냅니다.

    이러한 고삐 풀린 세상에서, 우리들이 노력할 수 있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진정한 삶의 가치들을 풍요롭게 해주는 지혜일 것입니다. 글로벌화 된 오늘날의 세상에는 많은 지식이 있습니다. 그 지식정보는 유용합니다. 그러나 정보가 흘러넘치는 오늘날의 사이버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 직면한 도전 사항 중의 또 하나는, 지식정보는 많으나 지혜를 토대로 한 가르침은 적다는 것입니다. 인간 삶의 진정한 가치와 풍요로움을 가져다주는 큰 공감대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현실이 우리가 미래에 대해 느끼는 불안감을 대변하지만,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을 불안감에서 해소시켜 줄 수 있는 그 어떤 지혜로움, 지혜로운 것 안에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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