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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2월 04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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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양리 양민학살 유해발굴 현장 르포

  • 기사입력 : 2004-05-2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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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양리 골짜기에는 가슴 아픈 현대사의 단면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 원혼
    의 눈물이 비가 되어 흐르고 있었다.

     경남대 발굴팀이 지난 한달여 동안 발굴한 유골들과 유품들, 그리고 그
    뒤에서 가족의 억울한 죽음을 소리없이 흐느끼며 지켜보는 유족들. 발굴팀
    장 이상길 교수의 브리핑이 시작되고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질 때마
    다 여양리에는 더욱 세차게 비가 흩뿌렸다.

     처음 도착한 발굴현장 산태골 숯막지역. 30여점의 유골들 속에는 불에
    타 색깔이 변해버린 것도 있었다. 당시의 상황을 더욱 여실히 증명하는 피
    해자의 유품 허리띠를 비롯해 그 옆에 놓인 M1 탄피와 탄두, 탄클립,
    MG50 탄피 및 연결고리 등은 현장을 더욱 을씨년스럽게 했다. 대공화기인
    MG50의 총구를 설마 민간인에게 겨눴을 줄이야!

     마을과는 3∼4km 떨어진 산의 사면을 통해 당도한 두 번째 학살현장 4호
    돌무지. 5명의 유골이 가지런하게 누워 있었다. 이 교수의 설명에 의하면
    허리띠가 한 피해자의 턱 부근에서 발견되었다 한다. 총으로도 부족해 허리
    띠를 살상도구로 쓴 흔적이다. 아마도 인근에서 학살한 후 이 곳에 옮겨다
    묻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바로 위 산길을 따라 올라간 3호 돌무지. 해발 350m는 족히 됨직하다. 수
    십구의 유골들 중 한 피해자의 손가락 부분에 반지가 걸려 있었다 한다. 결
    혼 예물 등의 특별한 의미가 담겼을 반지가 보는 이의 가슴을 더욱 안타깝
    게 했다. 신분증을 넣었던 것으로 보이는 비닐주머니. 사라진 신분증을 애
    타게 찾는 유족의 심정은 유해들 허리에 놓여진 고무줄 길이만큼이나 긴 회
    한이 되어 메아리쳐 온다.

     골짜기 한 협곡을 넘어서니 옛 구리 폐광이 나온다. 발전기를 돌려야 겨
    우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있는 어두운 동굴 속. 발굴 당시 입구를 단단히
    막아놓은 것으로 보아 은폐 의도가 확연히 드러난다. 고인 물과 눅눅한 습
    기만이 가득한 이 곳에 20여구 유해들은 완전히 썩지 않은 상태였다 한다.
    남은 살점들과 머리카락, 그리고 주인 잃은 안경과 옷가지, `光仲李尙`이
    라 인쇄된 종이조각은 보는 이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할 뿐이다.

     다시 폐광 왼쪽 길을 따라 들어가니 너덜지역(돌무지 1·2호)이 나타난
    다. 해발 280m 산등성이에 위치한 웅덩이 2군데에 각각 20여구의 유해가 어
    지러이 뉘어 있었다. 역시 독특한 문양의 손가락 반지, 신분증 비닐주머니
    와 함께 허리띠, 버클 등이 다량 포착된다. `독립 KOREA`, `LIBERTY` 등
    버클 앞에 씌어진 글자들은 50여년의 묻힌 세월에 녹슬어 바랬지만 그 의미
    는 살아 더욱 새롭다. 그러나 유족들은 버클 유무가 곧 수감자·보도연맹
    여부를 밝히는 주요 열쇠가 된다며 가족의 흔적을 찾아 문자의 의미가 현실
    에서 초라하다.

     마침내 조용히 흐르는 할머니의 눈물. 이어지는 전국 유족회 임원들의 정
    부에 대한 성토. 더구나 유해 옆 탄피배열로 미루어 확인사살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하는 이 교수의 설명보고에 여양리의 하늘은 좀체 울음을
    멈추질 않았다. 포에 가까운 MG50으로도 모자라 확인사살이라니! 역사의 질
    곡 앞에 다들 넋을 잃은 채 산골짜기엔 빗소리만 요란하다.

     앞으로 발굴팀은 현장 상황을 진척시킴은 물론 유해의 지속적인 정리·보
    관·관리를 통해 DNA 분석 등을 활용한 유족 확인에 적극 나설 예정이다.
    이에 이 교수는 유족 확인을 위한 창구, 사건전모를 구성하는 등의 상설기
    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방치하고 외면만 할 것
    인가`라는 유족들의 회견문은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었음을 절실히 느끼게
    해 준다.
     할머니의 이마 주름살은 더 이상 늘어날 공간이 없을 듯 보이는 서글픈
    오월 하루에 정부는 여전히 묵묵부답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갈태웅기자
    tukal@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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