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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03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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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허수아비- 황문규(경남도 자치경찰위원회 사무국장)

  • 기사입력 : 2022-09-29 19:5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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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나는 외로운 지푸라기 허수아비/ 너는 너는 슬픔도 모르는 노란 참새/ 들판에 곡식이 익을 때면 날 찾아 날아온 널/ 보내야만 해야 할 슬픈 나의 운명… 조정희가 노래한 ‘참새와 허수아비’의 가사 일부다.

    곡식이 익어가는 들판에 외로이 서 있는 허수아비는 가을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물씬 자아낸다. 가사에서처럼 허수아비는 들판에서 (참)새를 쫓아내어 곡식을 지키는 임무를 띠고 있다. 예전에 벼농사가 한창이던 시절에 허수아비는 대개 지푸라기로 만들어졌는데, 손이 많이 가더라도 밀짚모자까지 씌워 제법 사람 모양을 한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는 대충 나무 막대기에 비료 포대나 모자를 적당히 꽂는 정도이다. 새들도 시간이 지나면 허수아비가 자신에게 전혀 위험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허수아비 위에 올라가서 노는 새들도 있을 정도이니, 바쁜 세상에 굳이 정성 들여 만들 필요를 느끼지 못한 때문일 수도 있겠다. 때로는 마네킹이 허수아비를 대신한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경찰 복장을 한 마네킹을 보고 깜짝 놀란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허수아비는 결국 허수아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허수아비는 비유적으로 본래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경우를 일컫는다. 실질적인 권한은 주어지지 않고 허울 좋은 직함만 있는 바지 사장도 허수아비와 일맥상통하는 용어이다. 이러한 범주에 안타깝게도 ‘무늬만 자치경찰제’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자치경찰제도 포함된다.

    자치경찰제는 지역실정에 맞는, 그리고 지역주민이 필요로 하는 치안서비스를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지난해 7월 1일부터 전국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경남에도 합의제 행정기관으로 위원장(상임)과 상임위원 겸 사무국장, 그리고 비상임위원 5명 등 7명으로 구성된 자치경찰위원회가 있다. 법적으로는 경남경찰청장을 지휘·감독하면서 자치경찰사무를 관장하도록 돼 있으나, 위원회 업무를 처리할 사무국의 직원 인사·감찰권 하나도 제대로 행사하기 어렵다. 그러니 위원회, 특히 위원장과 상임위원은 허수아비나 다름없다. 지방시대를 내세우는 현 정부에서 전향적 제도 개선이 이루어지길 기대하는 이유다. 그런데 허수아비에게는 지켜야 할 명예가 없을까.

    황문규(경남도 자치경찰위원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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