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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02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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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역사적 자원과 이야기의 힘- 손경년(김해문화재단 대표이사)

  • 기사입력 : 2022-09-19 19:3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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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스토리’는 그리스어 ‘이스토리아’에서 유래한 것으로 ‘과거에 관한 탐구와 그 서술’이라는 뜻이며, 우리말로는 ‘역사’라고 표기한다. 역사학자들은 일반적으로 ‘과거에 일어난 사실은 역사의 대상이 될 수 있으나 그렇다고 모두 역사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과거의 사실이 특정 관심, 가치에 의해 선택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는 조선의 역사서로 〈조선왕조실록〉을 든다. 이는 조선시대 왕의 재위 기간 동안 있었던 사실을 기록한 사료다. 왕의 통치에 대해, 그 과정에서 발생한 사실이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실록에는 당시 가치가 덜한 백성의 삶의 기록이 없다. 다시 말해 민중은 역사의 대상으로 선택되지 않았다.

    헤로도토스의 〈역사〉 서문을 보면, ‘이 글은 할리카르낫소스 출신 헤로도토스가 제출하는 탐사 보고서다. 그 목적은 인간들의 행적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망각되고, 헬라스인들과 비(非)헬라스인들의 위대하고도 놀라운 업적들이 사라지는 것을 막고, 무엇보다도 헬라스인들과 비헬라스인들이 서로 전쟁을 하게 된 원인을 밝히는 데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의 역사 기술 원칙은 ‘나는 들은 대로 전할 의무는 있지만, 그것을 다 믿을 의무는 없다’는 것이며, 그래서인지 그는 하나의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내용을 병렬적으로 기술해 둔 경우도 있다. 후세의 사람들은 헤로도토스를 최초의 역사가이자 이야기꾼이라고 평한다.

    ‘과거의 사실 또는 기록’이라는 뜻과 ‘탐구 또는 구명(究明)’으로 역사를 정의하고 있는데 헤겔의 말을 빌리자면, ‘객관적인 역사’와 ‘주관적인 역사’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E.H. 카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반 일리치는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에서 ‘저는 미래에 대한 망상을 막기 위해 역사를 공부합니다. 역사학자에게 현재는 과거의 미래입니다’라면서 역사학은 ‘과거의 재구성’이 아니라 ‘현재의 낯섦음’을 발견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역사가는 일어난 일을 기술하지만 시인은 일어날 법한 일을 이야기한다’고 했다.

    1997년 영국 총선에서 승리했던 노동당은 적극적으로 ‘창조산업’을 통해 ‘강한’ 영국을 위한 문화정책을 펼쳤다. 영국의 역사적 자원들은 예술가들의 창의적인 스토리로 재구성되어 수많은 버전의 ‘헨리 5세’, ‘엘리자베스 1세’ 등의 영화, 연극, 뮤지컬, 소설 등이 나왔다. 예술가들은 역사적 사실에 대해 시대의 고증을 기본 축으로 하되, 작가적 상상력을 보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일어날 법한 이야기의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었다. 25년이 지난 오늘날 〈해리포터〉의 나라 영국은 GDP의 8%를 창조산업이 차지하고 있다.

    2년 전에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 미국의 아카데미 작품상 등 4개의 상을 받았던 ‘기생충’을 기억할 것이다, 작년에 방탄소년단(BTS)이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대상을 수상했고, 얼마 전에 드라마 ‘오징어 게임’으로 미국의 시상식인 에미상에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받는 일도 생겼다. 2002년 ‘겨울연가’, 2003년 ‘대장금’을 시작으로 2022년 우리나라의 문화예술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기생충〉이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던 이유는 ‘반지하’와 ‘지상’의 세계를 구분하여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일종의 상징적 장치를 잘 사용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현재 한국 사회에 대한 사실 왜곡이라기보다 전 세계를 지배하는 자본주의의 문제를 보편적인 감수성으로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감대를 얻었을 것이다. 요즘 한국 드라마, 영화, 클래식 음악 등 다양한 예술 활동의 세계적인 열풍과 관심을 보면서, 앞으로 우리의 역사 자원이 창의적인 이야기와 만나면 그 힘이 얼마나 커질지 여러 가지 상상을 하게 된다.

    손경년(김해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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