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2년 12월 05일 (월)
전체메뉴

[촉석루] 견뎌내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신혜영(작가·도서출판 문장 대표)

  • 기사입력 : 2022-09-14 19:36:25
  •   

  • 늘 변비가 문제였다. 묵은똥은 복통과 두통을 시작으로 온 몸을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다. 둔탁한 얼굴빛과 피부트러블은 덤이었다. 화장실은 총알 없이 최루탄만 터지는 전쟁터였다. 사실 장이 문제가 아니었다. 찬란해야 할 나의 삼십대는 귀경길 고속도로마냥 꽉 막혀있었다. 슬픔과 분노, 억울함과 참담함, 서글픔과 노여움, 명명하기도 어려운 그 복잡한 감정들이 똘똘 뭉쳐 내 마음을 장악했던 7년, 그 세월이 다 변비였다.

    죽을 수 없어 글을 썼다. 누구에게도 말 못할 이야기를 노트북에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상상하지 못할 엄청난 것들이 쉼 없이 몸 밖으로 빠져 나왔고 그렇게 나는 변비와 이별했다. 내 안에 있던 독을 빼고 보니 피부가 깨끗해지고 표정이 밝아지고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지 않게 됐다. 커피와도 헤어질 수 있었다. 카페인 중독에서 벗어나니 밤잠이 쉬워졌다. 호흡은 깊어지고 짜증이 현저히 줄었다. 감정기복이 사라졌고 사람에게 상처받을 틈이 없어졌다. 좋은 사람 만날 일이 점차 늘었고 나를 아프게 하는 이들로부터 나를 지킬 용기가 생겼다. 용수철 같은 즐거움에 내일이 기대됐다. 살맛나는 인생이란 게 이런 거구나. 나폴레옹도 부럽지 않았다. 그래도 워렌버핏은 좀 부러웠다. 이런 우스갯소리 할 여유도 생겼다. 아프고 보니... 아니 아픔에서 벗어나고 보니, 비로소 타인의 아픔이 보였다. 나만 아픈 줄 알았다. 나만 힘든 줄 알았다. 나만 죽고 싶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생긴 건 달라도, 이유는 달라도, 너도, 나도, 다 아픈 사람이었다.

    눈꺼풀을 치켜 올릴 기력이 없어 오기만 남은 몸뚱이는 카페인을 동맹군으로 만들면서 동시에 행복해 보이는 모든 인간을 적으로 삼았었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 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고 말한 톨스토이는 천재였다. 행복의 색깔은 비슷해서 꾸며내기 쉬웠다. 속이 다 무너져버릴 것 같았지만 행복한 척 웃고 다닌 나였다. 거짓행복에서 벗어나 보니 비로소 사람들의 가짜행복과 진짜슬픔이 보이기 시작했다. 팔을 벌려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신혜영(작가·도서출판 문장 대표)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