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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27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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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의 심리학] 환자 돌보며 내 마음 돌아보기

환자를 돌보며 자신 돌아보고 배움의 기회 갖게 돼
생존과 경쟁의 짐을 벗고 내적 성장·변화하는 여정
환자 거울삼아 내 마음 볼 때 세상으로부터 자유 얻어

  • 기사입력 : 2022-09-05 08: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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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 의료 기획은 ‘돌봄의 심리학’에 대해 알아본다. 희연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인 최경만 과장은 본인의 풍부한 임상 경험을 통해 ‘행복한 돌봄이 어떤 것인지’를 성찰하는 글을 보내왔다. 돌봄 전문가가 제언한 이 글은 환자는 물론 환자의 가족, 간병인, 의사 모두가 새겨들을 만한 내용으로, 글쓴이의 의도를 반영해 경어체 형식으로 싣는다.


    ◇모두가 행복한 돌봄을 위해= 몹시 아픈 환자, 인지가 떨어진 환자, 말기 암 환자, 의식 없이 누워있는 환자 등 병원이나 집에서 우리가 돌보는 환자가 있습니다. 그 곁에는 돌봄을 제공하는 가족, 간병사, 의료인들이 있습니다. 저는 환자가 행복하길 원할 뿐만 아니라 돌보는 가족과 간병하시는 분들 모두 행복하길 원하며 이 글을 씁니다. 그러나 필자가 환자를 더 잘 돌볼 수 있거나 환자를 잘 돌보는 방법을 더 많이 알아서 쓴 것이 아닙니다. 더 경험이 많고 능숙하며 성숙한 많은 분들이 환자들을 돌보고 계십니다. 단지 의사인 저에게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공부와 사색을 통해서 얻은 환자와 돌봄에 관한 견해들을 정리해서 독자들과 의견을 나누게 된 것입니다. 이 글이 환자와 더불어 고통 받는 가족들에게 무례가 되지 않고, 힘들게 일하시는 간병사님들의 어려움을 경시하는 것으로 읽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돌봄 그리고 돌아봄= 사람이란 누구나 나이를 먹고 아프기 마련입니다. 태어남이 있으면 돌아감도 있는 것이고 이것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진리입니다. 많은 분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다가 갑자기 죽게 되기를 바라지만 현대 사회에서 그렇게 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몸이 약해지면 정신도 약해지고 정신이 약해지면서 몸도 약해집니다. 서서히 몸과 정신이 약해져 가면서 죽음에 이릅니다. 많은 환자와 가족이 이정표 없는 긴 터널과 같은 시간을 혼란과 번민으로 보냅니다. 질병이 아니어도 삶은 그 자체로 고통스럽고 힘겹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소중하고 감사할 만합니다. 삶의 매 순간마다 소중하고 귀한 보석이 깔려 있지만 정작 환영과도 같은 욕망에 눈이 멀어 보석을 보지 못합니다. 인생이 긴 것 같지만 한순간이기에 진정한 성장은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일어납니다. 환자와 끝까지 시간을 같이 하고 그 분들의 성장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면 환자를 돌보는 분들에게 큰 기쁨이자 성장의 기회입니다. ‘내가 태어난 것과 아픔과 고통이 내 뜻도 내 잘못도 아닙니다. 먼 길을 날아 온 저 새들도 그러하니, 당신의 가장 따뜻한 곳에 품어 주세요.’ 아픈 이의 마음에 평화를 주는 이 시구는 돌봄의 깊은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돌봄은 자신을 돌아봄이고 큰 배움의 기회입니다. 내가 원해서 태어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질병과 고통이 당신의 잘못으로 찾아온 것입니까? 스스로 원하지 않았지만 인생의 고해를 건너야 하는 동병상련의 존재가 인간입니다.

    ◇환자가 스승이다= ‘권력과 부를 원할수록 자유를 잃는다’라고 했습니다. 세상살이에 필요한 생각과 행위는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합니다. 현실이라는 콩깍지를 하나씩 눈동자에 뒤집어쓰고 살아갑니다. 나이 들고 병들어 몸도 정신도 시원치 않을 때 오히려 우리는 생존과 경쟁이라는 짐을 벗고 자유로워집니다. 환자는 무력하고 의존적인 존재가 아니라 진정한 삶의 의미와 자유를 찾아 가는 고귀한 존재입니다. 고통과 장애의 역경을 딛고 생명에 순응하고 평화를 얻는 환자를 통해 우리는 현실적 삶에 결여된 본질적인 의미를 되새길 수 있습니다. 돌보는 이는 자신의 현세적 가치관을 가지고 환자의 상황을 보려고만 합니다. 환자의 표정이 바뀌고 분위기가 달라질 때 단지 질병이나 운명에 대한 긍정이나 수용의 신호로 보기도 하고 아예 못 알아채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환자의 변화는 내면의 전적인 변화입니다. 환자의 역사와 미래가 한꺼번에 바뀌는 순간입니다. 환자가 지내는 것을 보면 그 분이 살아온 삶과 맺어 온 관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표정이 평화로운 분도 있고 마음이 지옥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게 어찌 환자의 공덕이거나 잘못이겠습니까? 우주의 어떤 것도 홀로 존재하지 않으며 완전히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의식이 있는 환자이든 없는 환자이든 우리가 그 분들의 내면의 변화를 느끼게 되면 환자가 세상살이에 바빠 미루어 두었던 내적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갈등을 치유하고 마음의 평화를 찾아가는 길이 평탄하지는 않지만 많은 환자분들이 삶의 가장 소중한 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환자의 내적 성장과 변화는 온 우주의 변화입니다. 우리는 환자를 돌보면서 환자와 공감하고 그 여정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환자는 우리의 스승입니다. 내 마음을 거울삼아 환자를 볼 것이 아니라 환자를 거울삼아 내 마음을 볼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진정한 삶의 의미를 생각하고 세상으로부터 더 자유로울 수 있을 것입니다.

    ◇어려운 환자를 돌볼 때= 괴로워하거나 슬픔과 미움에 잠겨있거나 혼란에 빠져 거칠게 말하고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환자를 돌보는 것은 어렵습니다. 신체적으로도 어렵고 그 분의 현재 모습을 보고 마음을 대하는 것만으로도 괴롭고 힘듭니다. 내가 존경해 왔던 가족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언제 그칠지 모르는 고통에 암담하고 우울한 마음이 듭니다. 우리는 고통의 근원을 알지 못합니다.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 사라지는지 알지 못합니다. 고통이 끝났을 때야 비로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통으로부터 벗어났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모든 고통이란 그렇습니다. 끝이 보이는 고통은 고통이 아닙니다. 좋은 소식은 제가 본 많은 환자분들은 결국 화해와 평안의 삶을 살게 됩니다. 늦더라도 마지막 숨결에는 안식이 느껴집니다. 단지 태어남과 돌아감만을 인생이라 부른다면 그 때가 늦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진정한 삶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합니다. 방금 세상을 떠난 분의 얼굴이 환히 빛나는 것을 보면 악다구니로 살고 있는 나를 돌아보게 되고 부질없는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리= 이상규 기자

    도움말= 희연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최경만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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