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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9월 28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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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고추를 말리며- 최혜인(소설가)

  • 기사입력 : 2022-08-11 20:3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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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가 하는 영성공부 단체에 참 많은 사람들이 옵니다. 몸의 문제를 가진 사람도 있지만 마음 바이러스로 인한 괴로움으로 오는 분들이 대다수입니다.

    공부를 해 보니 아픈 마음의 뿌리는 부정적 감정이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그 감정은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기인한다는 것도 알겠습니다.

    우리의 기억장치는 어디일까요? 주로 뇌라고들 생각합니다. 뇌는 단기기억의 저장고가 맞습니다만 생을 달리해서 이어지는 장기기억 저장고는 세포입니다.

    세포 속에 스며있던 감정은, 까맣게 잊고 있던 강렬한 경험이 현실에서 재현될 때 되살아납니다. 그때의 감정은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어서 괴로움을 양산합니다. 어떻게 해야 괴롭지 않을 수 있을까요? 유일한 방법은 감정처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장마를 이겨낸 고추를 수확합니다. 초보 농사꾼의 보람이 알알이 맺혔습니다. 이웃의 기계 건조기를 빌리고 싶은 유혹을 떨쳐내고 태양볕에 말리기로 합니다.

    초록빛 꼭지를 그대로 단 채 원형대로 빠짝 마른 고추를 흔들면 찰찰, 과자소리가 납니다. 대지와 바람과 햇볕, 그리고 농부의 무조건적 사랑을 먹고서 내는 합주소리입니다. 그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타임머신을 타고 삼사십년을 거슬러서 머릿수건을 쓴 채 고추를 말리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햇볕을 흠뻑 받으며 일정기간이 지나면 과자소리 찰찰 나는 투명한 태양초가 만들어지겠지요. 괴로움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생겨납니다. 고추를 말리는 동안 저 역시 괴로웠습니다. 부푼 마음으로 고추를 내어 늘고 나니 말갛던 하늘에 먹구름이 덮더니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후다닥 걷어서 낑낑 마루로 올라갑니다. 어떻게 지은 농사인데….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 한 번 짓고는 마루에 보일러를 넣습니다.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씻은 후 냉커피 한 잔 마시고 나오니 아뿔싸! 어느새 구름이 걷히고 햇볕이 쨍쨍합니다. 귀한 볕을 허투루 보낼 순 없지…. 다시 걷어서 마당으로 내어 갑니다.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하는 사이, 마음에서 서서히 짜증이 올라옵니다. 도대체!

    저녁을 먹고 나니 허리가 결려옵니다. 몸은 마음의 거울입니다. 명상 속에서 마음을 만져봅니다. 욕심과 집착이 시커멓게 탁기로 뭉쳐 있는 것이 만져집니다. 기계로 건조시킨 고추가 아니라 오롯이 태양볕으로 말려낸 고추라는, 그래서 귀하디 귀한 물건이라는 소리를 그 누군가에서 꼭 듣고 싶은, 집착이라는 탁기입니다.

    그래, 누구나 욕심은 있고 하고자 하는 일에 집착할 수도 있지. 그렇지만 최선을 다 해도 안 되는 것에 집착하는 건 몸까지 망치는 짓이야. 마음을 따듯하게 만져주면서 수용한 후 잘가라, 흘려보내 줍니다.

    다음날, 가위로 고추를 자릅니다. 반으로 잘린 고추를 하루 동안 말리니 제법 까슬거립니다. 원형을 온전히 간직한 채 새파란 꼭지를 단 오리지널 태양초로 말려내야 한다는 욕심과 집착이 안녕, 하며 흘러갑니다. 마음이 참 좋습니다.

    최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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