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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9월 26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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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기억하겠습니다- 김효경(시인)

  • 기사입력 : 2022-06-02 20: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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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맘때면 늘 달력을 살핀다. 현충일을 앞두고 국립묘지에 갈 수 있는 날을 보기 위함이다. 필자는 시아버지를 위패로 만난다. 국립 서울현충원과 창원충혼탑에 이름 석 자로 계시는 그분은 6·25 전사자다. 그래서 남편은 어머니 뱃속에서 ‘전몰군경(전투 또는 대공 작전에서 싸우다 죽은 군인이나 군무원 및 경찰관)’ 유족의 ‘유자녀’가 됐다. 평생 아버지를 불러본 적 없는 그는 세상에서 가장 낯설고 어려운 단어가 ‘아버지’란다.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6·25 전쟁 당시 우리 국군과 경찰의 전사자는 무려 16만2394명이다. 이 중 현충원에 안치된 인원은 2만9400여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 말은 아직도 13만 명이 넘는 전사자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이 발발한 지 올해로 72년이 된다. 그때 참전했던 노병은 이제 거의 가고 없다. 그 미망인도 그렇다. 남은 이들도 대부분 병들었거나 홀로 지내며 그리 길지 않은 여생을 보내고 있다. 이들이 누군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우리말도 못하고 살다가 광복을 맞이했지만, 곧이어 터진 전쟁으로 운명이 갈라진 이들 아닌가.

    70을 훌쩍 넘긴 유자녀들은 어떤가. 전장에서 아버지를 잃고도 오로지 그 희생에 대한 존경과 자식으로서 자랑스러운 마음 하나로 홀로 된 어머니와 함께 모진 가난과 멸시를 견뎌왔다. 그들은 청춘과 꿈을 나라에 바치고도 외면당하고 있는 아버지의 명예를 되찾고자 지금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그 소리는 언제나 허공에 맴돌 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치던 보훈 정책은 이슈화된 다른 사건들의 우선 정책에 밀리고, 세대가 바뀌면서 사람들 관심에서조차 밀려버렸다. 그래서 그들은 할 말이 많고 그만큼 한도 많다. 이런 이들을 더 서글프게 하는 건 언제부턴가 나라의 미래를 책임지는 교육 현장에서 침략 당한 전쟁의 역사가 왜곡되고 있는데도 바로잡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6·25가 터져 갑자기 입대해 1953년 휴전되기까지의 악몽 같았던 하루하루를 기록으로 남긴 이가 있다. 몇 년 전, 이 생생한 기록이 ‘여든아홉이 돼서야 이 이야기를 꺼냅니다’라는 제목의 책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저자는 전투 중 자기 허벅지에 포탄 파편이 꽂혀 죽을 뻔한, 스스로 ‘지옥’이라 한 그곳에서 살아 돌아와 오랜 세월을 보냈음에도 “6·25전쟁의 기억만은 뚜렷이 각인돼 있다”고 말한다. 또 그는 전후세대에 이런 말도 전했다. “그대들은 나와 내 전우들이 목숨 걸고 지켜낸 이 나라에서 그 어떤 전쟁의 위험 없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한다. 그러려면 어떤 압박 속에서도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정신적인 무장을 단단히 해 본인 스스로부터 지킬 수 있어야 한다. 부디, 스스로의 평화와 이 나라의 평화를 모두 잃지 말았으면 한다. 그대들을 위해 기도한다”라고.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오늘날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며 전쟁의 참혹함을 그나마 깨달았다. 저 노병의 기도처럼 자신의 평화와 나라의 평화 모두를 지키기 위해 정신 무장을 단단히 하자. 바라보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현충원 묘비에, 나라 위해 몸 바친 호국영령들에게 부끄러운 후손이 돼서는 안 되지 않는가.

    김효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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