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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9월 26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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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그리움과 희망의 변증법- 안창섭(시인)

  • 기사입력 : 2022-04-28 20: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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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도 탱자꽃이 피었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추억을 소환하는 시간. 벚꽃 지나간 뒤, 조그만 과수원 울타리에 하얗고 조그만 탱자꽃이 피었다.

    ‘이사 가던 날’ 노래 가사에, ‘그 어릴 적 추억은 탱자나무 울타리에 피어오른다’는 구절이 기억난다. 탱자나무 울타리 메마른 햇살을 괴고 앉아 고만고만한 참새들이 어리광을 풀어 놓고 가는 풍경이 가시에 찔린 그때의 아픔보다 더 큰 추억에 잠겨본다. 탱자꽃의 꽃말은 ‘추억’이다. 추억은 참 아름답다고 했던가?

    인간의 삶에서 그리움과 추억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하고 허전할까? 그리움의 감정은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정서로 많은 문학의 소재가 됐다. 즉 삶은 사랑과 추억이 쌓이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리움에 애증이 교차되고, 살면서 추억의 부스러기를 찾아서 헤매는 그런 날들의 밤을 보내게 된다. 그러므로 예술 작품은 사랑과 그리움의 대상에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 이야기들을 다양한 예술로 표현한다.

    여기는 바닷가/ 어느 마을 탱자 울타리/ 가다가 주춤 서서/ 부질없는 그이 생각/ 눈감고/ 어루만져 보는/ 가슴속의 탱자 꽃 - 이은상, ‘탱자 꽃’ 전문

    조용한 바닷가, 그리운 사람은 떠나고 추억할 수 있는 외딴집의 탱자꽃,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은 참으로 힘겨운 일이다. 게다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사람을 기다린다는 것은 지독한 고독과 싸워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눈감고 어루만져 보는 가슴속의 보이지 않는 꽃, 우울하고 슬픈 꽃이다.

    잊어야 할 것은 빨리 잊고, 또 버려야 할 것은 빨리 버릴 수 있어야 세상 사는 일이 편해지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절망과 실에 빠져 몇 년간 허덕여 본 사람이라면 더구나 어린 자식을 잃고 참척(慘慽)의 슬픔을 견디며 숨 막히는 고통을 누구에게도 하소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윤천 시인은 ‘만약 누군가 내게 그리움에 대해 묻는다면, 탱자꽃에 비기어 대답하리. 작지만 완강한 꽃잎에 비기어 대답하리’라고 썼다. 얼마나 그리움의 완강한 표현인가?

    누구는 찔레꽃은 참 슬픈 꽃이지만, 탱자꽃은 참 서러운 꽃이라고 했다. 푸른 가시 사이사이로 작은 꽃봉오리를 보면 조롱조롱 피는 탱자꽃의 그리움은 울타리를 넘어 당신에게 간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수많은 고통과 역경이 칡넝쿨처럼 얽혀 있다. 살다 보면 가시밭길이나 자갈길을 만나기도 하고, 그 길을 간신히 헤치고 나오면 벼랑이나 절벽이 길을 막아서기도 한다. 그래서 정직하게 이 세상과 맞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몇 번쯤은 절망과 좌절을 맛보게 된다. 하지만 그때마다 우리를 일으켜 주는 것, 그것은 바로 희망이다. 넘어져 있는 우리의 손을 잡아주고,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는, ‘희망’. 희망은 삶에 지친 마음과 상처 입은 영혼을 어루만지며 우리가 살아 지금껏 살아가는 힘의 뿌리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희망을 희망답게 하는 것은 역시 사람이다. ‘사람의 사람다움’ 속에서 우리의 상처는 쉽게 아물고 희망은 더욱 희망다워지는 것이다. 함께 눈물 흘려 줄 사람, 가슴 끌어안아 줄 사람, 그리고 따스한 두 손을 내밀어 줄 사람이 우리는 그토록 그리운 것이며. 사람에게서 희망을 배우며 사람에게서 희망을 나눠 갖게 되는 것이다.

    안창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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