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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2월 01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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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ON] 부자 氣받기- 삼성·LG·효성 창업주 이야기 3부 ⑨ 부산에서 동동구리무 만들다

[3부]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LG그룹 창업주 구인회
더 큰 도시로 나가 꿈꿔 왔던 기업 경영에 도전하다

  • 기사입력 : 2022-04-15 07:4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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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인회가 장사를 통하여 몇 번의 춘하추동을 보내자 ‘주식회사 구인상회’를 운영할 정도로 한층 성숙해졌다. 해방이 되었다. 이제 새로운 세계로 진입할 기회가 왔다. 진주 상봉동 봉 알자리를 거닐면서 자신에게 약속하고 다짐한, 더 큰 도시로 나가서 기업을 경영하겠다는 결심을 실천할 시기가 되었다. 구인회는 부산으로 선택하였다.

    부산은 해운이 발달된 도시이다. 경상남도 도청이 있는 곳이다. 진주보다 몇배 더 일할 공간이나 환경이 나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해방 전에 사두었던 전답을 팔아서 현금을 확보하였다.


    구씨와 허씨의 동업은 1946년 1월, 진주 지수 출신 허만정이 부산 조선흥업사에서 구인회를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2005년 LG그룹과 GS그룹으로 분리되었다.

    # 부산에서 무역업 시작

    1945년 9월, 부산시 서대신동 3가 513번지에 주택을 마련해 가족들을 데리고 이사를 갔다. 그리고 서울에 가 있던 동생 구철회와 구정회를 불러 부산에서 새로운 사업에 참여하도록 했다.

    3형제가 모여 의논한 결과 생필품 물자를 조달하는 무역업을 시작하기로 결정하였다. 1945년 11월 구인회는 ‘조선흥업사’를 설립하고 미군정청 무역업 제1호 허가증을 발급받았다.

    첫 번째 무역품목으로 목탄을 결정하였다. 부산에는 일본식 건물이 많고 대부분 다다미방이라 숯으로 난방을 하였다. 숯 판매 사업이 전망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러나 해방 전 일본의 자원 수탈로 민둥산이라 숯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구인회는 일본 대마도까지 숯을 구입하러 갔다가 풍랑에 좌초되는 시련도 겪었다. 합천 해인사 부근에서 목탄을 구입 후 부산에서 판매해 보았지만 그 이윤이 진주포목점 경영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비참한 현실을 맞이한다.

    진주 상봉동에서 해운도시 부산으로 이사
    구철회·구정회 삼형제 모여 무역업 시작
    조선흥업사 설립하고 미군정청서 1호 허가
    첫 무역품목으로 목탄… 수급 어려워 시련

    지수면 부자 허만정이 아들과 만나러 와
    구·허 4인방 모여 화장품 판매사업 논의
    기술자 김준환과 공장 설립 후 크림 제조
    화장품 상표·디자인 정할 대책회의 열어

    # 구인회를 찾아온 허만정과 허준구

    한편, 조선흥업사를 설립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46년 1월, 부산 사무실에 고향에서 손님이 찾아왔다. 지수면 승산의 가장 큰 부자인 허만정이 아들 허준구와 함께 구인회를 만나러 온 것이다.

    “내가 사돈이 진주에서 포목점을 운영하는 것을 보았소. 사돈의 사업능력과 인품을 충분히 알고 있었소. 일본에서 공부를 하고 귀국한 내 아들을 사돈한테 맡기고 싶소, 밑에 두고 일을 좀 가르쳐 주시오. 그리고 사돈이 하는 사업에 나도 자금을 보태고 싶소.”

    조선흥업사 설립 자본금의 25%를 동업 자금으로 내놓았다.

    이날이 구씨와 허씨 집안의 첫 동업이 시작되는 역사적인 날로 기록되고 있다.

    구인회의 장인 허만식은 허만정과 재종관계이다. 허준구는 구인회의 동생 구철회의 장녀와 결혼하였다. 허준구의 처삼촌이 구인회이다.

    허만정은 아들 허준구에게 “아들아, 경영은 구씨 집안이 잘하니 너는 절대 나서지 말아라. 처신과 몸가짐을 잘하고 돕는 일에 충실히 하여라”고 하였다.

    주식회사 구인상회에서 발행한 주권.
    주식회사 구인상회에서 발행한 주권. /구인회회고록/

    # 동동구리무, 크림사업에 도전하다

    시골장터 풍경이다. 등에는 커다란 북, 가슴에는 아코디언, 입에는 하모니카를 물고 있다. “동동구리무 사세요. 쿵, 쿵,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진 손등에 이 구리무 발라봐. 손등이 매끌매끌해져. 까칠한 얼굴, 이 구리무 바르면 봄처녀 치마처럼 부드러워져.” 지나가던 여성들, 그냥 못가고 1통씩 사가지고 간다. 동동구리무 노래 가사야 엿장수 마음대로 자기 편한 대로 지어서 불렀다. 동동구리무, 동동구리모, 크리무, 크림으로 엇비슷한 발음이지만 동일한 제품을 말한다.

    구인회가 진주에서 포목점을 끝내고 부산으로 와서 처음으로 시작한 사업 품목이 ‘동동구리무’였다.

    # 당구장에서 시작된 사업 아이템

    구인회, 구철회, 구정회 3형제와 허준구까지 합류한 구허(具·許) 4인방의 조선흥업사는 제대로 된 사업 품목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하루 하루를 심심하게 보내던 시기였다. 특별하게 진행되는 일이 없자 28세의 혈기왕성한 청년 구정회는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사무실 옆에 있는 당구장 출입이 많았다. 여러 차례 당구장을 출입하다 보니 화장품 크림 제조회사인 ‘흥아화학공업사’에 다니는 ‘김준환’ 기술자를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구정회는 김준환과 내기 당구도 치고 가끔은 주점에서 세상사는 이야기도 나누었다. 어느 날 김준환이 “우리 회사가 여성용 화장품인 아마쓰(천진) 상표 크림을 만드는데, 이 크림을 한번 판매해봐라. 판매는 도청 상공과의 허락을 받은 대리점만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집으로 돌아온 구정회는 형 구인회에게 당구장에서 만나 김준환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전해주고 판매사업을 해보자고 제의를 하였다.

    # 화장품 판매를 시작하다

    며칠을 고민한 구인회는 이 사업을 하기로 결심하고 도청 상공과에서 화장품 판매허가서를 받아왔다. 판매 장소는 아직 대리점이 없는 서울로 가서 판매를 하기로 하였다.

    구인회는 현금으로 500타의 아마쓰 크림을 구입하고 서울 남대문 시장으로 가져갔다. 화장품 판매 소매점을 찾아 설명하였지만 쉽게 거래되지 않았다. 국산품이고 지방에서 만든 제품이라 품질이 낮을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해방과 함께 근대문물이 유입되자 양장 차림에 화장도 하고 멋을 내기 시작하면서 화장품도 팔리기 시작하였다. 경쟁회사 제품도 몇 곳 없었고 아마쓰크림이 가격도, 품질도 적당하여 하루 하루가 다르게 매출이 늘어났다.


    주식회사 구인상회 법인 현황./자료출처= 이래호/

    # 화장품 공장을 설립하다

    마침내 생산과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크림을 생산하는 흥아화학공업사 사장은 기술자 김준환과 처남 매부 관계이다. 서로의 갈등으로 인해 김준환이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김준환이 “내 기술로 크림을 만들 수 있다”고 하자 구인회는 “내하고 우리 집에 크림 만드는 공장을 차리자”고 제안하였다. 김준환이 만들고 구인회가 판매하는 형태로 협의하였다.

    어느 날 구인회 자택과 공장이 있는 마당에 구인회 형제와 김준환이 다 모였다. 김준환이 숙달된 실력으로 여러 가지 재료를 배합하고 복잡한 공정을 거친 후 크림을 만들어 냈다. 첫 생산에 성공한 조선흥업사는 “우리가 생산하는 크림에도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다. 이름을 지어서 우리 상표로 판매하자.” 구인회, 구철회, 구정회, 허준구, 김준환이 모여 대책회의를 하였다.

    구정회가 “화장품은 서양의 제품을 인정하는 시대이니 우리도 크림통에 예쁜 서양의 여배우 사진을 붙이자.” “할리우드 여배우 ‘디아나다빈’을 모델로 하고 크림 이름도 영어로 하자.”

    〈구인회의 한마디〉 신용이 제일이다.

    이래호 전 경남개발공사관광사업본부장
    이래호 전 경남개발공사 관광사업본부장

    이래호 (전 경남개발공사 관광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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