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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9월 26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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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도심 속 거님길 예찬 - 정희숙 (아동문학가)

  • 기사입력 : 2022-04-14 21:4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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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오 무렵, 중앙동에 갈 일이 생겼다. 출발지는 파티마병원 부근. 어차피 빨리 가도 점심시간이 지나야 일을 볼 수 있다. 시간 될 때까지 걸어서 가보기로 했다. 대원동으로 가는 다리를 지났다. 시티세븐 부근 골프 연습장 옆에 산으로 난 나무계단이 있었다. 무슨 길인가 싶어서 조금 올라가자 ‘도심속 거님길’에 대한 표지판이 있다.

    팔용동 ‘남산공원’에서 시작된 거님길이 ‘사화공원’과 ‘대상공원’을 지나 중앙동으로 이어진다고 돼 있다. 이곳이 대상공원 초입이다. 다음 경로도 있지만 오늘의 관심사는 중앙동까지다. 숲길로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니! 뜻밖의 횡재에 신바람이 났다. 호기심에서 나무계단을 올랐던 게 신의 한 수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산길을 걷기로 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었다. 가다가 지치거나 시간에 쫓기게 되면 도중에 찻길로 내려오면 될 터. 힘닿는 데까지 가보자며 걸었다.

    숲에는 찬란한 봄빛으로 한껏 들떠 있었다. 나뭇가지마다 연둣빛 새움이 돋고, 벚꽃과 살구꽃도 환히 피어나고 있었다. 아름드리의 소나무도 반겨주었다. 산새들의 지저귐이란 도심에서는 꿈도 못 꾸었던 일이다. 보도블록과 포장길만 걷던 발도 마른 솔잎의 푹신함에 호사를 누렸다.

    혼자 흥에 취해 걷노라니 절제된 인공미도 마음을 흡족하게 한다. 인위적인 시설물이라곤 길 안내판과 나무의자, 소박한 시비와 몇 가지 운동기구 정도다. 인공적으로 치장을 할수록 자연과 멀어진다.

    찻길 건너 사화공원도 이처럼 온전히 보존됐다면 좋았을걸. 끊임없이 지어지는 건축물에 쫓겨 사라져가는 게 도심 속 산의 운명이련가. 사화공원은 공원일몰제에 따라 일부지역에 아파트공사가 한창이다. 급기야 산이 있던 자리에는 높다란 건물이 우뚝우뚝 솟으리라.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숲, 돈으론 환산할 수 없는 울창한 나무들이 무자비하게 파헤쳐졌다. 많고 많은 나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중장비가 벌겋게 속살 드러낸 산을 뭉개는 것을 볼 때마다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숲길을 만난 감회가 클 수밖에.

    접근성 불편하고 한갓진 동서식품 뒤 팔용산 자락에는 혈세로 인위적인 공원을 조성해놓고, 사화공원은 왜 20년이나 방치해 일몰제에 이르게 했을까? 어쩌면 공원지정은 했지만, 애초부터 공원으로 개발할 의지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도심 속의 오아시스인 사화공원이 반쪽으로 줄어 애석하기 짝이 없다. 도시에서 집 가까이에 산이 있다는 건 복이다. 멀리의 이름난 산도, 보도블록으로 깔끔하게 단장된 공원도 좋지만, 우리 거님길을 찾아가보자. 거님길의 자연 숲에서 새소리, 풀벌레 소리 들으며 흙길을 밟아보자.

    문성대학 뒤를 지나 충혼탑으로 내려왔다. 다음 경로인 극동방송 뒷길이 막혔다기에 교육단지로 접어들었다. 때마침 벚꽃이 절정이다.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방금 지나온 길에서 만난 시를 읊조리며 걸었다. 화사한 벚꽃처럼 밝고 가벼운 발길로 대상공원에서 중앙동까지 1시간쯤 걸렸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염원해본다. 부디 도심속 거님길이 훼손되지 않기를, 많은 사람들이 자연의 숲에서 지친 심신을 달랠 수 있도록 길이길이 보존되기를!

    정희숙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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