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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네 살배기의 날갯짓- 허숙영(수필가)

  • 기사입력 : 2022-02-24 20:4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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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 살배기 손녀가 온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집안은 난장판이 됐다. 유성매직으로 방문이며 바닥에다 마음대로 긋고 다니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문갑의 온갖 물건들이 거실로 끌려나와 나뒹군다. 많지도 않은 내 화장품도 남아 있을 리 없다. 뚜껑을 죄다 열어 놓고 립스틱으로 온 얼굴에 칠을 하고 나타나 식구들이 폭소를 자아낸다. 매일 보던 장난감이 아니라서 더 왕성한 호기심이 일었을 것이다.

    거실을 운동장 삼아 뛰기도 한다. 몇 번이나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고 타일러 보지만 그때 뿐이다. “네가 뛰면 아랫집 아저씨는 머리가 아프다”며 며느리가 제지를 해 보지만 소용없다. 이것은 이래서 안 되고 저것은 저래서 안 된다며 아이의 자유를 막고 있다. 온종일 어른들에게서 들을 수 있는 말은 “안 돼, 하지 마”라는 부정어이다.

    한창 말을 배울 시기이지만 모두들 입을 가리고 있다. 입모양과 표정을 보며 말을 배우고 그에 따른 감정까지 익혀가야 할 시기인데 코로나로 그 과정이 삭제 돼버렸다. 친구들과 부딪쳐가며 끌어안기도 하고 울면서도 금방 배시시 웃는 것이 아이들이다. 그러는 동안 인격도 형성돼 가는 것인데 거리두기부터 배워간다.

    아들 부부는 결혼한 지 네 해 만에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둘만 있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던 사는 지역이 아이가 생기니 생각이 달라지더라고 한다. 직장이 있는 OO시는 교육환경이 형편없어 아이를 키울 곳이 못된 단다. 유아원, 병원 등 믿고 맡길 수 있는 시설을 비롯한 다양한 인프라가 없단다. 주변사람들도 아이만 태어나면 서울로 이사를 간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서울 근교로 이사를 간 아들내외를 나무랄 수만은 없다. 자식 키우기 좋은 환경을 찾아 출퇴근의 고생쯤이야 감수하겠다는데 누가 과잉교육이라 말할 수 있을까. 하나 키우기도 힘들어 동생을 낳으려던 계획까지 접었다는 며느리의 말에 머리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출생률이 낮으니 아이 수에 따라 돈으로 보상하려 한다. 300만원의 출산지원금에서부터 매월 양육수당을 지원하겠다며 열을 올리는 지자체도 있다. 돈 몇 푼 쥐어 주는 것으로 출산율이 높아지리라는 발상은 아닐 것이다.

    시급한 것은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는 환경이다. 제일 좋은 방법이야 엄마가 키우는 것이지만 맞벌이를 해도 당해낼 수 없는 집값이 문제다. 안심하고 뛰놀 공간이 없다는 것도 큰일이다. 부모가 다니는 회사에 자녀를 위한 유치원을 들여 안심하고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점심시간에라도 잠깐 볼 수 있고 퇴근하면서 데리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속담이 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사랑과 배려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닐까.

    집에서는 있을 수 없어 손녀를 데리고 경남 수목원으로 향한다. 수목원 울을 따라 도열된 아름드리 메타세쿼이아의 사열을 받으며 들어서니 아이는 벌써 저만치 팔을 벌려 찬바람과 맞서 달리고 있다. 어린이 동산의 아기 돼지 세 마리 모형 앞에서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좋아서 팔짝팔짝 뛰며 노래를 부르는 네 살배기 날갯짓에 응원을 보낸다. 동물원의 사슴은 이 강추위에 구경나온 우리들을 더 신기한 듯 멀뚱멀뚱 바라본다.

    별세계에 온 것처럼 청아하게 웃는 손녀의 잔상이 오래 머물 듯하다.

    허숙영(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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