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2년 10월 07일 (금)
전체메뉴

[작가칼럼] 또 다른 배움의 시작- 우영옥(시조시인)

  • 기사입력 : 2022-02-17 20:07:54
  •   

  • 등굣길 양쪽으로 가로수가 즐비하게 서 있다. 오랜만에 찾은 길이다. ‘내 나무’도 제법 굵어졌다.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자기 자리를 잘 잡고 사는 나무, 해가 갈수록 더 튼튼하게 잘 자라나는 나무, 그래서 아이들에게 나무 같은 사람이 되자고, 각자 ‘내 나무’를 정하기로 하자고 말했었다. 퇴근 무렵 같이 나오던 학생이, 선생님 나무는 어느 거냐고 묻기에 내가 정한 것을 알려 주자,

    “아니, 제일 약한 나무네요!”

    “응, 튼튼히 잘 자랄 거니까.”

    그랬던 게 이제 나이테를 제법 갖게 됐다.

    그 중학생들을 떠나, 지금의 어르신 학생들을 만나며 생각이 바뀌었다.

    저녁 시간에 운영하고 있는 우리 한글반 학생들은 평균 연령이 높다. 그래서 이름 뒤에 호칭이 붙는다. 여학생한테는 “000 언니”, 남학생한테는 “000 오라버니”라고. 수업시간 집중도가 뛰어나서 두 시간 수업이 후딱 지나간다. 쉬는 시간도 허리 한번 펴시라며 잠시만 쉬자고 할 정도이다.

    우리 어르신 학생들은, 드라마나 영화로 볼 수 있을 듯한, 그런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신 분들이다. 학교에 무척 다니고 싶어도 다닐 수 없었던. 하지만 이제는 남들보다 좀 늦었을 뿐 가장 젊게, 활기차게 사신다.

    교과서 챙겨서 등교하시어 비슷한 연배의 급우들과 담소를 나누고 수업 시작되면 열심히 하시는 게 참 보기 좋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가르치는 것보다 더 많이 배우고 온다. 그분들은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을 앞서 걸어가고 계시는 인생의 선배이시기에.

    그래서 나도 생각이 바뀐 것이다. 이제는 ‘나무처럼’이 아닌 ‘덩굴식물처럼’ 살 때구나 하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향해 손을 뻗을 줄 아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향해 손을 내밀 줄 아는 그러한 덩굴식물처럼 말이다. 그래서 도울 일이 있으면 미비한 힘이나마 보탠다. 우리 어르신들의 영향력으로 인함이다.

    이제 어르신 학생들은 ‘읽기’는 잘하신다. 수필도 읽고, 시나 시조도 읽고. ‘쓰기’ 부분에서 어려워하시기에, 쑥떡 같이 하셔도 찰떡같이 알아본다며 틀린 글자 있어도 다 이해되니까 괜찮다고 응원한다. 사실 우리 한글의 우수성은 다들 알고 있듯이, 글자 한두 개 틀려도 내용 전달에는 별 무리 없다. 그리고 지난 겨울방학 들어갈 때는 편지도 써 주셨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인사가 들어 있는 처음으로 받은 귀한 손 편지. 틀린 글자를 알려 드리면서도, 편지를 써주셔서 제가 더 감사하다는 인사를 빠뜨리지 않았다. 언젠가 작품집 한 권 만들어 보자며 힘을 전하기도 했다.

    오래 묵은 나무에는 세월의 흔적이 깊다. 여러 대를 이어 온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내가 앞으로 갈 길을 먼저 걸어가고 계시는 분들, 앞서 사시면서 숱한 일들을 생생하게 경험하셨던 분들, 이분들이 온몸으로 뚫고 지나오신 그 치열한 시기들, 앞선 세대의 어르신들이 계셨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 자명한 일이다. 그분들을 구태의연한 사고를 가진 ‘꼰대’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배워야 할 점이 많은 역사의 현장을 지나온 분들이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그리고 그 분들의 힘든 과정도 지나갔듯이, 우리의 어렵고 힘든 과정도 다 지나갈 것이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 지금도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 어르신들과, 그리고 새봄, 새롭게 배움의 길을 갈 모든 학생 및 학우들께도 응원을 보낸다.

    우영옥(시조시인)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