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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9월 26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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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탱자 가라사대- 도희주(동화작가)

  • 기사입력 : 2022-02-03 20:3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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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 근처 등산로 초입에 작은 음식점이 있다. 개발제한구역이라 이렇다 할 상호는 없다. 국수 막걸리 파전. 등산객들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메뉴다. 주위를 에두르며 앞엔 펜스 사이로 사철나무가 있고 뒤엔 탱자나무가 있다.

    숨찬 걸음으로 올라가기 바빴고 내려오기 바빴던 터라 탱자나무를 눈여겨볼 여유가 없었다. 얼마 전 전화를 받으며 주춤주춤하다가 무심코 탱자나무를 보게 됐다. 잎은 다 떨어지고 살벌하게 느껴지는 가시와 가시 사이에 탱자 하나가 보였다. 윤기를 잃어 노란색이 아닌 누런색에 가까웠지만 오랜만에 보는 거라 사뭇 반가웠다. 등산스틱으로 툭 건드리자 덤불 위에 똑 떨어졌다. 보물이라도 되는 양 조심스럽게 꺼냈다. 먼지가 눌어붙어 약간 끈끈했다. 생수에 대충 씻어 몇 번을 닦자 탱자 특유의 향기가 폐부 깊숙이 파고들었다. 손바닥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어 동생들과 몇몇 지인에게 보내 탱자의 추억을 공유했다. 요즘 이 귀한 탱자를 어디서 땄냐고 물었다.

    예전엔 동네 어딜 가든 쉽게 볼 수 있는 게 탱자나무였다. 텃밭이나 과수 울타리는 으레 탱자나무였으니까. 필자의 유년 시절 집 뒤 언덕엔 포도밭이 있었다. 철제 대문이 작은 창처럼 나 있었고 사방으로 탱자나무가 촘촘했다. 가시와 가시 사이엔 틈이 없다시피 했다. 한눈에 봐도 무시무시했다.

    탱자는 상품 취급을 받지 못했다. 떨어져 구르면 아이들이 발로 차며 놀기도 했고 굳이 따려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어쩌다 부지런한 아낙들이 어린탱자를 따서 썰어 말려 한약방에 팔아 찬값에 보탰다. 잘 익은 탱자로 술을 담그기도 했지만 식용으로도 그다지 쓸모는 없었다. 같은 계열 과실인 감귤이나 레몬·오렌지·유자보다 천대받는 게 역력했다. 논밭이 사라지고 도시화하면서 울타리 대신 담을 쌓는 동안 탱자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탱자. 인터넷을 뒤져봤다. 어라, 나만 몰랐지 탱자의 인기가 보통이 아니다. 멋진 병에 담긴 탱자 효소는 상당히 비싼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다양한 성인병에서부터 요즘 흔한 고질병인 아토피 피부염에도 효과가 있단다. 가뜩이나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 아토피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많아 그런 쪽에서 탱자가 인기를 끄는 모양이다. 심지어 탱자 묘목을 나눠준다는 곳도 여럿 있다. 등산길에서 주워온 탱자를 다시 보니 신통하다. 비록 못생기고 천대받던 과실이었지만 지금은 상전벽해 몸값이 금값이다.

    가만히 돌이켜 보면 우리 사는 세상에도 탱자를 닮은 사람이 참 많을 것 같다. 대부분 비슷비슷한 직업을 선호하거나 종사하면서 경쟁이 치열하고 그 과정에서 낙오자 되기 십상이다. 처음부터 자신의 쓸모를 찾지 못하거나 인정받지 못해 뒤처지는 사람도 있다. 누구나 남과는 다른 자기만의 특별한 능력이 분명 있다. 그런데도 비슷한 능력을 요구하는 사회에 자신을 끼워 맞추면서 숨겨진 자신의 재능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거로 생각한다. 자신의 재능에 부합하는 일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청춘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도태된다면 그건 사회적 낭비다.

    탱자를 작은 접시에 담아 책상 한쪽에 올려놓았다. 못생기고 약간 지저분했지만 향기는 정말 진하다. 늦은 쓸모를 발견한 탱자. 얼마나 대견한가. 사람도 개개인이 가진 특별한 재능을 찾아내는 것을 교육의 우선 방향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탱자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도희주(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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