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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9월 28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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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한 자리 비었네요- 허숙영(수필가)

  • 기사입력 : 2022-01-27 20: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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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차장이 꽉 찼다. 100여대는 들어갈 만한 넓은 공간인데 차들이 많긴 많은가보다. 몇 바퀴 돌다 겨우 한 자리를 발견해 하얀 실선 안에 차를 들이밀고 보니 본래 내 소유인 듯 뿌듯하다. 한 발만 늦었어도 주차를 못할 뻔했다.

    안도의 숨을 쉬고 두어줄 건너편을 보니 웬일인지 한 자리가 비어있다. 그곳은 비취빛 지붕이 있어 뜨거운 햇볕을 가려주고 앞도 훤하다. 슬그머니 욕심이 동한다. 그곳으로 이동을 해야 하겠다고 시동을 걸자 다른 자동차가 내 자리에 들어올 차비를 하고 선다. 엊그제도 후진으로 주차를 하려는 사이 머리부터 들이민 차로 인해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가. 겨우 잡은 자리마저 뺏길 것 같아 도로 주저앉는다.

    저 좋은 자리를 두고 왜 어정거릴까. 괜히 미안해진 나는 내릴 생각도 하지 않고 손짓으로 건너편에 한자리 비어있다고 가리켰다. 어정쩡한 내 행동에 차가 빠지길 기대했던 그는 아쉬운 듯 뭉그적대다 떠났다.

    나는 그곳을 살폈다. 그 사이에 여러 대의 차가 주차를 하려고 뒤꽁무니를 들이밀었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하고 떠나기를 반복한다. 소형차조차 맴돌다가 그냥 간다. 한 자리 비었다는 생각에 들떠 쫓아왔을 운전자들의 실망하는 마음이 읽힌다. 직접 가보니 옆 칸에 주차된 차가 다른 차선을 물고 대각선으로 비스듬히 서 있다. 한 뼘이나 남의 공간을 침범하고 있다.

    용무가 얼마나 급했으면 저렇게 대어놓고 갔을까. 초보운전자가 제대로 해보려다 아무래도 안 되니까 그냥 두고 갔을까. 그렇게 주차할 수밖에 없는 사연을 이해해 보려고 그럴듯한 추측을 해본다. 하지만 한 자리가 아쉬운데 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다른 운전자들의 화를 북돋우기에 충분하다. 할 수만 있다면 차를 훌쩍 들어 바로 앉히고 싶다.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정권 말기에 낙하산, 알박기식의 공기업 인사를 감행해 말이 많다. 한때는 정규직 문제로 나라가 떠들썩한 적도 있었다. 말썽을 일으켰던 공기업 직원과 남의 차선을 물고 비뚜름하게 두 자리를 차지한 차가 겹쳐진다. 건너편 빈자리처럼 불볕 내리쬐어도 국가라는 지붕이 가려주는 일자리, 나라가 무너지지 않는 이상 꼬박꼬박 월급 받으며 해고될 위험도 없어 신의 직장이란 소릴 듣는 곳이다.

    그 좋은 자리에 부모권력을 이용해 머리부터 디밀어 넣는 얌체가 있다. 잠시 한 발을 걸쳤다가 정규직으로 풀쩍 뛰어 선 안으로 들어선 사람도 있다. 부모를 등에 업고 행운을 거머쥔 자식은 거만해지는 것부터 배우지 않을까. 열쭝이에게 꿈같은 횡재를 안긴다면 제대로 나는 방법을 배우기도 전에 도태되어 버리지나 않을까.

    공약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간절하게 꿈을 펼칠 기회를 얻고자 준비해 온 희망을 꺾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얻기 위해 벼랑 끝에 서 보지 않으면 모른다. 수십 번의 이력서를 써 이리저리 뛰어 본 사람이라야 그곳에 들어갈 자격을 얻을 수 있다. 밤잠 줄여가며 숨죽여 공부한 젊은이들이 들어가야 한다.

    떳떳하지 않은 방법으로 남의 자리까지 침범한 차에는 주차위반 딱지가 제격이다. 차는 계속 들어오건만 들어갈 공간이 없어 헤매다가 도로 돌아 나간다. 바깥을 둘러보아도 차를 안전하게 주차시킬 만한 곳이 없다.

    “한 자리 비었네요.” 가장 듣고 싶은 말을 해 주고 싶다.

    허숙영(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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