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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9월 29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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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보물과 고물을 구분하는 눈- 양미경(수필가)

  • 기사입력 : 2021-06-03 20:2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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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낡은 전기압력밥솥 때문에 고민한 적이 있다. 밥을 짓는 데는 큰 문제가 없는데 압력 기능이 떨어져서 지어진 밥이 푸석했다. 밥이 지어지지 않는다면 버리면 그만인데 먹는 데는 지장이 없을 정도니 버리기가 아까웠다. 윤기 흐르는 밥을 지으려고 시골에서 ‘좋은 쌀’을 구해다 밥을 짓기도 하고, 찹쌀을 넣어도 보았지만, 밥은 여전히 푸석했다.

    생각다 못해 밥솥을 바꾸었더니 확실히 밥맛이 달랐다. 찹쌀을 안 넣어도 찰지고 구수하기까지 했고 윤기마저 좌르르 흘렀다. 그렇다고 오래된 밥솥을 버리는 것은 망설여졌다. 어딘가 모를 쓸모가 있지 않을까 해서다. 갈등을 견디며 몇 달을 다용도실에 내버려 두었더니 볼 때마다 거치적거렸다.

    쓰레기 분리수거하는 날, 이웃 여자분이 꽤 낡아 보이는 전기밥솥을 들고나왔다. 경비원이 분리수거를 하다 말고 고장 난 거냐며 물었다. 그 주부는 고장은 아닌데 압력 기능이 약해져서 버리는 거라고 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던 다른 주부가 대뜸 끼어든다. 그거 사용할 수 있겠는데 그리 버리면 어쩌냐는 거였다. 그걸로 맥반석 달걀이나 요플레도 만들고, 발효 흑마늘도 만들어보라며 만드는 방법까지를 알려준다. 그리고 인터넷을 열어보면 다양한 사용 방법을 배울 수 있다며 덧붙이는 말이 “세상 물건이란 모르면 고물이고 알면 보물”이란다.

    얼른 집에 와서 인터넷을 열어보니 전기밥솥으로 할 수 있는 게 한둘이 아니었다. 청국장, 누룽지, 다양한 찜 요리에 약밥까지 두루 만능했다. 새로 산 솥으로도 만들 수야 있겠지만, 그건 항시 보온해야 하므로 다른 요리까지는 어렵다. 낡았지만 멀쩡한 솥이 하나 더 있으니 활용도가 그만이다.

    맥반석 달걀부터 만들어보기로 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밥솥에 물을 붓고 달걀과 식초와 소금을 약간씩 넣고 취사를 두 번 돌린 후 꺼내어 껍질을 까니 갈색의 멋진 맥반석 달걀이 나왔다. 이럴 수가! 내친김에 요구르트도 만들기로 했다. 우유 한 병에 요구르트 한 개를 넣고 한 시간을 보온으로 뒀다가 끄고 8~9시간 이후 열었더니 특유의 향을 풍기며 근사한 요구르트가 만들어졌다. 이제는 시간이 나는 대로 흑마늘을 만들어볼 참이다.

    고물과 보물의 차이는 물건뿐 아니라 사람에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인재를 고르는 것 또한 너무 단순한 것 같다. 학교든 사회든 시험문제로 인재를 선발하는 낡은 시스템은, 재능 있는 인재의 선발은커녕 버리기가 더 쉬울 것 같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자신의 쓰임새를 알지 못해서 허비하는 때도 있고 남이 몰라줘서 허비되는 일도 있다.

    쓸모없어서 버린 전기밥솥도 훌륭한 조리기구가 되듯, 사람도 다양한 관점에서 살피면 활용도 또한 크지 않을까. 우리 사회나 교육기관은 능력을 테스트할 때면 같은 문제를 놓고 한 줄로 세운다. 그리고는 점수 높은 순으로 사람을 선발한다. 이 과정에서 공통의 문제에는 약하지만 특출한 재능의 소유자도 어김없이 탈락한다. 그런 이들이 우리 주변에 자꾸만 늘어가는 것 같다. 잉여 인간이 많은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힘든 시기일수록 보물을 고르듯 사람 고르는 방법도 다양해져야 하지 않겠는가.

    양미경(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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