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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9월 26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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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봄이고요, 밤이고요, 그러니까 안녕- 이서린(시인)

  • 기사입력 : 2021-03-18 20: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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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입니다. 도시와 달리 시골의 봄은 소리로 옵니다. 물론 쑥이 나오고 냉이가 올라오니 눈길로도 봄은 찾아옵니다. 꽃은 당연하고요. 그러나 그보다 먼저 소리로 오는 봄소식에 앞산 뒷산, 옆집 뒷집, 마을 어귀 쪽으로 귀를 세웁니다. 아침 마당에 서면 왼쪽에서 따르르르, 오른쪽에서 따르르르. 딱따구리가 집을 짓느라 동네가 떠들썩합니다. 소리 예쁜 딱새가 전깃줄에서 한참을 지저귀다 가고요, ‘인디언추장새’라는 별명을 가진 후투티는 저의 마당에 놀다 갑니다.

    겨우내 잠잠하던 경운기도 몸을 털고 마을 길, 논둑길을 폼잡고 다닙니다. 아, 경운기라기보다 뒷집 할아버지가 폼나게 경운기를 몰고 다니신다는 뜻입니다. 밀짚모자를 비스듬하게 쓰고 목에는 수건을 두른 어르신의 뒷모습은 위풍당당합니다.

    경운기 다음으로 자주 보는 것이 유모차입니다. 마을에 아기가 많은 것이 아니고요, 할머니들이 몸을 기대고 다니는 보행 보조용 유모차랍니다. 날씨가 따뜻해지니 마실 나오시는 거지요. 마을을 천천히 돌다가 논이나 밭에서 일하는 마을 분을 만나면 의자 겸용 유모차에 앉아서 한참 이야기도 나눕니다. 봄은 소리로 옵니다.

    밤입니다. 봄이고 밤입니다. 호로록 호로록, 개구리가 웁니다. 드디어 귀신휘파람새도 등장하였습니다. 원래 이름은 호랑지빠귀인데요, 영락없이 귀신의 휘파람소리같이 울어서 귀신휘파람새라고 하지요. 이사 와서 처음 들었을 땐 얼마나 무서웠던지 마당에 별 보러 나갔다가 옴마야, 하면서 후다닥 방에 들어왔답니다. 익숙해졌지만 낮에는 괜찮은데 밤에는 아직 조금, 아주 조금 무섭습니다(후후). 이 밤에도 봄을 피우려 나무는 자면서도 조금씩 움을 틔우려 꿈틀거리겠지요. 대문 밖에는 작을 개울이 졸졸 흐릅니다. 마을 외등 아래 제 긴 그림자를 보면서 하늘을 올려다 봅니다. 별이 깜박이는 봄밤입니다.

    봄밤을 건너는 중입니다. 거기, 당신도 봄밤을 건너는 중이겠지요. 자주 만나기 힘든 요즘. 안부가 궁금합니다. 거리두기로 우리는 각자 봄 속으로 걸어가는 중입니다. 손을 잡고, 혹은 팔짱을 끼고 서로의 웃는 모습을 보면서 가던 봄날은 어디쯤에 있을까요. 사람과 사람이 ‘가까기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어버린 슬픈 봄입니다. 언제쯤 우리는 서로 거리낌 없이 악수하고 포옹도 할 수 있을까요.

    외신을 보니 오랜 거리두기의 후유증으로 외롭고 고립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심리 치유법으로 ‘소 껴안기’ 프로그램이 있다고 합니다. 코로나로 인한 새로운 사업이 등장한 것입니다. 마스크를 하고 커다란 소와 포옹하면서 심리적 안정과 위안을 받는다고요. 미국 애리조나주의 한 농장은 시간당 75달러(약 8만5000원) ‘소 껴안기’ 프로그램이 7월까지 예약이 찼답니다. 사회적 유대관계를 맺을 때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인 옥시토신이, 소와 포옹할 때 활성화되어 정서적 안정을 준다는군요. 자기 몸보다 큰 동물에 안길 때 효과가 더 있다고요. 하물며 사람과 사람끼리는 더욱 그렇겠지요. 동물과의 교감도 분명 필요합니다. 하지만 사람과의 포옹에 대한 불안한 세태를 반영해 조금 쓸쓸합니다.

    봄밤을 걸어 걸어 당신께 갑니다. 봄밤의 소리를 가슴에 담으며 당신께 갑니다. 제가 당신을 안아주러 갈 때까지 안녕하기를. 그러니까, 부디 안녕하기를.

    이서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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