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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6월 16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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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미얀마의 봄, 지지한다- 조윤제(창원자치부장)

  • 기사입력 : 2021-03-15 20: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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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얀마에서 지난달 1일 발발한 군사 쿠데타로 우리나라와 UN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얀마 군사 쿠데타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연일 벌어지고, 이들을 진압하는 미얀마 군경이 무차별 총격과 폭행을 가해 누적 사망자가 100명을 넘는 등 유혈사태가 확산되기 때문이다. 미얀마 내부 인권단체에서 우리나라 ‘경남외국인노동복지센터’로 알려오는 현지의 사진과 동영상은 처참해서 더는 보기 힘들다.

    #1960년 대한민국의 봄= 시간을 61년 전으로 돌이켜보면 1960년 3월 15일 대한민국 경남 마산에서도 현재 미얀마와 비슷한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이승만 정부의 부정선거에 항거하면서 시위를 벌이던 마산의 학생과 시민들을 향해 경찰이 총격을 가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것이다. 급기야 마산상업고교(현 마산 용마고교) 학생 김주열 군의 얼굴에 최루탄이 박힌 섬뜩한 주검이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자 학생·시민들의 분노와 저항은 극에 달했고, 이같은 대정부 투쟁이 전국으로 퍼져 이승만 정권을 붕괴시키는 4·19혁명을 완성시켰다. 그해 마산의 봄은 붉은 피로 꽃을 피웠다. 척박한 땅에서 차마 못다핀 꽃들은 민주화의 자양분이 되고자 분연히 쓰러졌다. 허수아비 하나하나가 뭉쳐져 커다란 산을 이뤄 국민을 허수아비로 생각해온 오만한 정권을 들이받아 붕괴시켰다. 우리는 이를 ‘3·15의거’라고 부르며 대한민국의 봄을 가져온 최초의 민주화 운동이라고 기록한다.

    #1979년 부산·마산의 가을= 1979년 10월 18일 밤 7~8시쯤으로 기억한다. 마산 오동동 파출소 부근에 살고 있었던 기자는 그날 저녁 시위대의 함성소리가 들려온 오동동 파출소 쪽으로 향했다. 먼발치서 바라본 그곳에는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고 있었다. 시위대의 시위가 격화되자 경찰이 최루탄을 쏘았고, 시위대가 흩어질 때 기자도 시위대 후미에 섞여 뒤로 물러섰다. 이때 경찰이 쏜 최루탄 파편이 물러서던 기자의 엉덩이를 가격했다. 파편을 맞는 순간 아팠지만 다행히 큰 파편은 아니어서 며칠 후 아픔이 사라졌다. 하지만 최루탄 가스가 온 동네에 날려 물수건으로 코를 막고 전등을 모두 끈 채 숨죽이면서 밤을 지샜다. 기자가 중학교 2학년 때 일어난 ‘부마민주항쟁 시위’ 중 마산 오동동 파출소 습격현장이었던 것이다. 그해 10월 16일 부산에서 불기 시작한 유신독재타도의 물결이 18일 마산에서 정점을 이뤄 끝내 10·26사건으로 유신독재를 종식시킨 것이다.

    #미얀마의 봄, 지지한다= 미얀마 민주화 운동 지지 물결이 국제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다. 특히 비슷한 민주화운동의 아픔을 간직한 우리나라에서 더 많은 지지가 체계적으로 열린다. ‘민주화의 성지 경남’에서도 다양한 지지운동이 열린다. 경남외국인노동복지센터와 미얀마 교민들이 시위대를 돕기 위한 모금운동을 펼쳤고, 그 성금을 미얀마로 보내기도 했다. 3·15, 부마민주항쟁, 6월 항쟁, 김주열 열사 등 도내 민주단체에서도 미얀마의 저항을 지지하는 성명 발표와 다각적인 방안을 연대하고 있다. 지금 미얀마 시위대에게는 시위현장의 직접적인 지원과 국제사회에서 군부 쿠데타 세력을 괴멸시키는 연대운동이 절실하다. 특히 UN과 각 국가에서 군부를 지원하는 자금지원을 철저히 차단해 반민주로 정권을 찬탈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부디 미얀마 시위대가 후대에 자랑스러운 민주주의 국가를 우뚝 세우는 지평을 반드시 열길 바라며, 한 편의 지지의 글을 보낸다.

    조윤제(창원자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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