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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사라지지 않는 왕국의 주인- 김향지(소설가)

  • 기사입력 : 2021-03-04 20:2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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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사물은 시간이란 시험대를 견디지 못하고 심연 속으로 사멸되어 버린다. 하지만 이야기는 매우 오래전 인류의 출발과 함께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여 더욱 다채롭게 흥기하고, 대접받으며, 막대한 부를 창출하기까지도 한다. 신화, 서사시, 서정시, 비극, 로망스, 소설, 영화, 드라마, 웹 소설, 웹 툰, 웹 드라마, 팩션 등으로 장르 변신을 거듭하며 공존하고 있다. 그것을 전달하는 매체만 달라졌을 뿐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컴퓨터의 등장으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던 전달 매체들이 융합되어 이야기를 구현해나가는데 최적화되기까지 했다. 이쯤 되면 이야기는 생존하기 위해 다 계획이 있는 듯하다. 예측해 보건대 앞으로도 이야기는 사라지질 않을 것이다. 다만 이야기를 담아내는 매체와 장르가 어떻게 변모될지가 미지수일 뿐. 이렇게 이야기가 인류와 함께 성장하고 있는 근원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야기 변천 역사를 통해 그 비밀을 밝혀보자.

    가장 오래된 이야기 형식인 신화에는 주로 세계의 창조와 기원에 대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고대인은 그들이 살고 있던 세계를 ‘신’적인 존재의 활동 결과물로 인식했다. 그렇게 고대인들의 세계 인식이 집약된 것이 신화이다. 신화 다음으로 등장한 이야기 장르인 서사시(Epic)는 민족이나 나라의 태동기와 관련된 신에 버금가는 건국 영웅들의 기담이 주류를 이룬다. 인류 역사 초기에는 신과 영웅의 행적이 주된 내용을 이루다가 어느 순간부터 인간은 개인 자신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뮤즈의 영감을 타고난 특별한 개인이 자신의 감정과 자의식을 리라(Lira)라는 악기에 실어 표현한 것이 서정시(Lyric)이다. 서사시의 내용적인 것과 서정시의 운율을 종합해 탄생한 것이 고대 그리스 비극(Tragedy)이다. 보통 사람보다 높은 고귀한 신분인 왕이나 영웅의 비극적 삶을 통해 오만의 댓가는 죽음이라는 경고가 주로 그리스 비극에 표현되어졌다.

    중세에는 귀족의 연애담이나 기사들의 무용담인 로망스가 대유행이었고, 18세기 무렵부터는 평범한 인간의 일상사를 다루기 시작한 새로운 스타일의 이야기가 나타났는데 그것이 근대 소설이었다. 초기 소설에는 주로 보통 인간의 일상성과 사회상을 아주 핍진하게 보여주다가 후기에는 인간의 내면을 다루기 시작한 심리소설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프로이드식의 가족서사가 현대 소설의 주종을 이루었다. 현재에는 역사적 인물의 내면적 모습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팩션 소설이 한동안 대중들의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이렇게 오랜시간동안 인류와 함께 해 온 이야기 속에는 시대별로 인식한 인간 세계의 총합과 인간의 자기 이해가 집약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가 자신이 경험한 것을 이야기하고자 하고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이야기를 통해 배우고, 이야기를 통해 자기를 발견하는 인간의 이러한 보편적 특성을 서사해석학자 폴 리쾨르는 ‘서사적 정체성’이라고 명명한다. 이 서사 정체성으로 인하여 이야기가 인류와 함께 존속해 온 것이다. 서사 정체성은 사라지지 않는 이야기 왕국의 주인이다. 그런데 이 왕국의 주인은 취향이 까다롭다.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그래서 이야기도 끊임없는 자기 변혁을 시도할 수밖에 없다. 재미없는 이야기는 죽음이기 때문이다. ‘천일야화’의 교훈에서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있다.

    김향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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