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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07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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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찔레꽃 향기가 그리운 봄날- 김정희(수필가)

  • 기사입력 : 2021-02-25 20:3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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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기운이 완연하다. 봄이면 푸르름을 단풍으로 단장시켜 떠나보냈던 공연장 주변의 나목들도 불그레한 신열 속에서 움을 틔운다. 더불어 이맘때면 신춘음악회 준비를 위한 리허설로 공연장은 북적이곤 했다. 다양한 레퍼토리를 준비한 출연진들이 관객을 맞이할 설렘으로 들뜨던 시즌이지만 너무도 조용하다. 거제문화예술회관이라고 다를 바 없다.

    코로나로 침묵의 상징이던 마스크가 생활의 필수품으로 변한 지 오래다. 이런 마당에 팀으로 호흡을 맞추어야만 하는 공연예술인들은 함께 숨 쉴 공간이 아쉽다. 관객은 관객대로 좋은 공연이 언제 시작되는지, 누가 오는지 궁금해하며 물어오던 광경도 옛일이 됐다. 신춘음악회에 대한 상념에 잠기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공연이 있다.

    몇 해 전인가 싶다. 봄을 위한 명품 소리꾼 장사익 초청 공연인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라는 신춘음악회 공연을 기획했다. 소리꾼 장사익은 인생 후반기를 고민해야 할 나이에 새로운 인생을 열어젖힌, 이 시대의 전설처럼 기억되는 가수이다.

    장사익을 세상에 알린 ‘찔레꽃’에 얽힌 이야기는 그의 인생사만큼이나 설화적이다. 어느 5월 바람결 따라 나는 향기가 장미꽃 향기인 줄 알고 따라가 봤는데 우거진 수풀 속에 숨어 핀 찔레꽃 향기였다고 한다. 그 꽃을 보고 ‘이게 바로 나로구나. 내 처지가 찔레꽃을 닮았구나’ 하고 한참을 목놓아 울고 돌아와서 만든 노래가 ‘찔레꽃’이라고 한다. 비록 외향은 남들의 눈에 띄지 않는 소박함이지만 그 내면에서 풍기는 향기는 장미를 능가하는 찔레꽃의 소박함을 닮은 소리꾼 장사익.

    그의 노래 중엔 대중음악이 잘 다루지 않는 죽음을 주제로 다룬 노래들이 많다. 상여 앞소리를 즉흥적으로 풀어낸 ‘하늘 가는 길’과 고려장을 당하는 노모가 아들이 혼자 내려올 길을 걱정해 솔잎을 뿌리는 내용을 담은 ‘꽃구경’이 있다.

    그리고 천상병 시인의 ‘귀천’, 정호승 시인의 ‘허허바다’, 서정주 시인의 ‘황혼길’, 허형만 시인의 ‘아버지’ 등 죽음을 주제로 다룬 시들이 장사익의 소리에 엮이곤 했다. 장사익의 노래 속에는 삶의 부분이 그대로 녹아 있다. 관조를 노래하며 살아온 그의 내면에는 측은지심이 조용히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코로나로 갇힌 세상 속에서 지내다 보니 그간의 소소한 삶이 얼마나 소중했던가를 느끼게 하는 요즘이다. 미술계에서도 코로나 사태를 인간사회의 급진적인 발전이 초래한 경고라고 여기면서도, 다만 이 시기를 슬퍼할 일이 아니라 반성의 기회로 삼자는 설치미술전 등이 개최되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가 세상의 많은 삶의 패턴을 바꾸고 있다. 어쩌면 복잡한 인간관계의 만남을 지양하고 각자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져보라는 경고의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이런 때일수록 문화예술이 인류에게 미치는 커다란 위안과 기쁨이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다.

    봄의 빗장을 열치던 장사익의 무대처럼 코로나의 터널을 지나고 나면 새로운 희망이 열릴 것이다. 일제 강점기 치하에서 고문으로 스러져 간 윤동주 시인도 ‘시대를 슬퍼할 일은 없다’고 절규했듯이 말이다. 머지않아 코로나도 물러갈 것이다. 그러면 명품 소리꾼 장사익의 농익은 찔레꽃 향기 같은 공연들을 다시금 접할 시간을 갖게 되리라. 그날이 기다려지는 봄날이다.

    김정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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