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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9월 26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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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어머니의 사진기- 김정희(수필가)

  • 기사입력 : 2021-01-21 19:5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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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해를 맞이하여 서재를 정리하다 보니 오래된 앨범이 눈에 들어온다. 가끔 지나간 추억이 그리울 때면 버릇처럼 앨범을 넘기는 습관이 있던 터였다. 앨범 속에는 시간이 멈춘 채 갈무리된 추억들이 파노라마로 숨을 쉬고 있다. 그중 유독 눈에 띄는 가족사진을 보면서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되돌아가본다.

    그러니까 몇 년 전 명절이었다. 오랜 외국 생활 후 귀국한 오빠 가족과 막냇동생 그리고 우리를 뒤이어 도착한 여동생 가족 등 몇 년 만에 사 남매가 다 모였다. 아버지와 함께 감청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으신 어머니는 자식들과 손주들의 세배를 받은 후 화장대 서랍에서 사진기를 꺼내신다. 그리고 온 집안을 뛰어다니며 북새통을 피우는 손주들을 향해 연신 셔터를 누르신다. 나는 어머니의 사진 찍는 모습을 볼 때마다 과연 저 고물 사진기에서 사진이 제대로 나올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어머니는 모처럼 다 모였는데 가족사진을 찍자고 하신다. 어머니의 솜씨를 믿지 못하는 자식들은 이왕이면 사진관에 가서 찍자고 했다. 어머니는 왜 비싼 돈 들이고 그런 데서 찍냐며 이 사진기로 얼마든지 잘 찍을 수 있다며 핀잔이다. 어머니의 실력을 한번 믿어보자는 아버지의 중재에 자식들은 마지못해 뒤뜰로 나갔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주 모델로 자식들을 번갈아 세운 후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사진 찍기 모델에 익숙해지셨는지 요구하는 포즈에 잘도 응해 주셨다. 한참 동안 식구들은 추위 속에서 어머니의 사진 찍기가 끝나길 기다려야 했다.

    나는 단순히 취미로 보기엔 도가 지나친 듯한 어머니의 사진 찍기가 궁금해서 “어머니 이렇게 사진 찍어서 뭐하시려고 그러세요” 했더니 빙그레 웃으시면서 “너희들 보고 싶을 때 보려고 그러지” 하신다.

    단순히 어머니의 성가신 취미로만 생각했던 나는 가슴이 뭉클해옴을 느꼈다. 방으로 들어와서 열어 보인 어머니의 화장대 서랍에는 그동안 찍은 사진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예전의 사진 찍기는 필름을 사 넣고 현상과 인화까지 번거로움과 기다림이 곁들여져야만 했다. 그에 비해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무작정 찍는 시대이다. 사진이 현상될 때까지의 그 기다림도 필요 없는 내가 원하는 사진을 바로 확인하면서 더 멋진 포즈를 취할 수 있다. 수시로 특별한 이유도 없이 스마트폰 사진을 찍는 것이 습관 아닌 습관이 되어버린 시대다. 순간의 포착을 기억하기보다는 스쳐 지나가는 인스턴트식 기억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가 넘기는 앨범에도 드문드문 빈자리가 생겼다. 아이들이 제 어릴 적 사진들을 골라서 빼간 것이다. 이 앨범의 빈자리처럼 내 가슴에도 빈자리가 생겼다. 아마도 어머니의 가슴에는 빈자리가 이보다 더 많았을 듯싶어 마음이 애잔하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빠져나간 그 가슴의 빈자리를 채우려고 사진 찍기를 시작하신 것이다.

    사진기의 셔터가 눌러지는 순간 시간은 정지한다. 그 정지된 시간을 하나의 공간 속에 가두어 그 순간을 즐기시는 어머니. 사진(寫眞) 즉, 참모습을 그린다는 의미로써 진실성과 객관성을 가장 날 나타내는 사진. 어머니의 가족들에게 참모습을 그리는 작업인 ‘사진 찍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김정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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